사랑의 모순과 생의 명료함은 정말이지 대조적이어서, 오히려 둘 사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앞 면과 뒷 면을 한번에 볼 수 없듯, 사랑과 현실을 한 번에 인식하지 못했다.탈출이었고, 고립이었다. 감정은 그 만큼의 고통이었고, 고통은 그 만큼의 증거였다. 사랑은 현현하지 못했지만 고통은 여러가지 형태로 현현했다.그건 공간일 때도 있었으며, 발기한 몸일 수도 있으며, 손바닥 위 알약, 위스키 반 잔, 잠에서 깬 순간의 불쾌이기도 하고, 가끔은 고지서, 가끔은 독촉문자이기도 했다.이미 굳었다고 생각한 그림의 물감이 대책없이 번졌다. 번지는 그림에 손도 대지 못한 채 그냥 사랑과 생이 한데 섞여 흘러내리는 걸 보고 있을 수 밖에 없다.내 몸이 그렇게 번졌다. 열병인 듯, 문신인 듯, 혹은 꽃이 피는 듯, 부패하는 듯 몸의 경계가 무너졌다. 어쩐지 사랑은 점점 명료해지고, 생은 점점 모순으로 변한다.모든 답을 알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몸은 대책없이 죽음을 맞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