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윤세민

제목202501282025-07-06 02:36
작성자 Level 10

1.75리터 짜리 코스트코 위스키를 방금 끝냈다. 사람들이랑 먹은 게 약 1/3 정도 내가 먹은 게 약 2/3 정도 된다. 또 새로 사러 가야한다.

이번주에 뭘 했는지 알고 싶어서 보관된 스토리를 들어갔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재작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보니까 좋은 사진도, 재밌는 글도 많았다. 그리고 자책만 했던 작년, 재작년이었는데 돌아보니까 내내 정말 엄청 노력하고 엄청 많은 것을 하며 진짜 재밌게 살았다. 친구들은 2024년을 나의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불렀고, 유부남들이 내 스토리를 보고 부럽다고 했었는데 둘 다 맞는 말이었다.

혼술을 하겠다고 혼자 처음가는 바를 돌아다니면서 취해서 별 추태를 다 부리고, 이상한 아저씨들에게 술을 얻어먹기도 했다. 혼술에 10만원을 넘게 쓰는 일도 흔했고, 그 와중에 러닝을 하겠다고 차에 운동복을 챙겨다니며 한강이나 여기저기를 혼자 뛰어다니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수영을 등록해서 이제 수영을 할 줄 아는 인간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작년에 해낸 가장 큰일이다. 난 이제 수영을 할 줄 아는 인간이다!) 게다가 <주간 윤세민>도 작년부터 쓰기 시작했고, 요즘엔 뜸하지만 몇 편의 엽편도 썼다. 게다가 독서모임도 나가서 한 달에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1년 내낸 자책을 한 것 같은 삶이 돌아보니까 이렇게나 뿌듯한 삶이었다니!!

통장이 텅 비어서 자존감이 뚝 떨어졌는데, 돌아보니 칭찬을 해주고 싶을 정도로 정말 눈물겹게 노력하고 있던 삶이었다. 보다 보니까 재밌는 것도 발견했는데 8월 3일에 홍대에서 혼자 취한 밤이 있었다. 학교 동생이 하는 바에 가서 추태도 부리고, 연트럴 파크에서 혼자 술을 먹다가 만취한 밤이 있었는데, 그날 스토리에 ‘혼자 만취하는 밤은 이제 그만’이라고 올렸더라, 지금의 연인이 그 스토리를 보고 DM을 보냈고, 정말 혼자 밖에서 만취한 밤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또 재밌는 기억을 하나 찾았는데, 올 여름에 충동적으로 츄바스코의 래더 샌들을 샀다. 그리고 (아직 직장이 있을 때) 녹음이 있던 토요일 출근에 그 샌들을 처음으로 개시했다. 그날도 저녁에 혼술을 할 생각에 차를 두고 대중교통으로 녹음시간 2시간 전에 출발했다. (1시간 30분이 걸린다.) 그런데 이놈의 신발이 완전 쓰레기였다. 발볼은 좁고 길이는 길고, 도무지 발에 붙어 있을 생각을 안했다. 10걸음을 채 걷지 못하는 상태였다. 도무지 걸을 수가 없었음에도, 나의 구매가 실패가 아니라고 믿고 싶어서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좀 더 걸어보려 했다.

양말을 신으면 좀 나을까 싶어서 지하철역 편의점에서 양말을 사보기도 하고 (이때 슬리퍼를 샀어야 했다.) 손으로 샌들을 잡고 이리저리 늘리고 줄여보기도 했는데, 샌들은 여전히 3걸음 만에 발에서 튀어나가는 상태였다. 제대로 걸을 수가 없어서 나중엔 그냥 신발을 손에 들고 뛰었다. 의왕역에서 차를 놓치고 신길역에서 신발을 손에 들고 뛰었음에도 결국 녹음은 20분 정도 늦었다. 그리고 그 이틀 후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당연히 그날의 지각이 해고의 이유는 아닐테지만, 나로썬 쳐다도 보기 싫은 신발이 되었다, 나중에 잘라서 슬리퍼로도 신어 봤지만 역시 전혀 쓸모가 없는 착화감이라서 그냥 쓰레기봉투에 넣어버렸다. 이후로도 츄바스코를 신을 일은 없을 예정이다.

어쩌다보니 정초에 그렇게 작년을 돌아보았다. 십 몇 년 만에 통장 잔고 제로를 만든 2024년은 실제로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노력하고 움직인 한 해였다. 운동하고, 공부하고, 노력해서 놀고, 읽고, 쓰고, 하려했던 모든 것을 시도했던 한 해였다. 전혀 몰랐는데, 마지막 날에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일을 구해야 한다. 아직 실직사실을 모르는 부모님을 만나야 한다. 이번 명절엔 돈을 드리지 못한다. 카드값이 잔고의 2배를 넘어섰다. 다 10년 전에 겪었던 일인데, 10년 전보다 10년이 더 늙었다.

근데 이토록 열심히 사는 나라면, 어쩌면 괜찮을 지도 모르겠다.

스크린샷 2025-07-06 11110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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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5리터 짜리 코스트코 위스키를 방금 끝냈다. 사람들이랑 먹은 게 약 1/3 정도 내가 먹은 게 약 2/3 정도 된다. 또 새로 사러 가야한다.

    이번주에 뭘 했는지 알고 싶어서 보관된 스토리를 들어갔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재작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보니까 좋은 사진도, 재밌는 글도 많았다. 그리고 자책만 했던 작년, 재작년이었는데 돌아보니까 내내 정말 엄청 노력하고 엄청 많은 것을 하며 진짜 재밌게 살았다. 친구들은 2024년을 나의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불렀고, 유부남들이 내 스토리를 보고 부럽다고 했었는데 둘 다 맞는 말이었다.

    혼술을 하겠다고 혼자 처음가는 바를 돌아다니면서 취해서 별 추태를 다 부리고, 이상한 아저씨들에게 술을 얻어먹기도 했다. 혼술에 10만원을 넘게 쓰는 일도 흔했고, 그 와중에 러닝을 하겠다고 차에 운동복을 챙겨다니며 한강이나 여기저기를 혼자 뛰어다니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수영을 등록해서 이제 수영을 할 줄 아는 인간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작년에 해낸 가장 큰일이다. 난 이제 수영을 할 줄 아는 인간이다!) 게다가 <주간 윤세민>도 작년부터 쓰기 시작했고, 요즘엔 뜸하지만 몇 편의 엽편도 썼다. 게다가 독서모임도 나가서 한 달에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1년 내낸 자책을 한 것 같은 삶이 돌아보니까 이렇게나 뿌듯한 삶이었다니!!

    통장이 텅 비어서 자존감이 뚝 떨어졌는데, 돌아보니 칭찬을 해주고 싶을 정도로 정말 눈물겹게 노력하고 있던 삶이었다. 보다 보니까 재밌는 것도 발견했는데 8월 3일에 홍대에서 혼자 취한 밤이 있었다. 학교 동생이 하는 바에 가서 추태도 부리고, 연트럴 파크에서 혼자 술을 먹다가 만취한 밤이 있었는데, 그날 스토리에 ‘혼자 만취하는 밤은 이제 그만’이라고 올렸더라, 지금의 연인이 그 스토리를 보고 DM을 보냈고, 정말 혼자 밖에서 만취한 밤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또 재밌는 기억을 하나 찾았는데, 올 여름에 충동적으로 츄바스코의 래더 샌들을 샀다. 그리고 (아직 직장이 있을 때) 녹음이 있던 토요일 출근에 그 샌들을 처음으로 개시했다. 그날도 저녁에 혼술을 할 생각에 차를 두고 대중교통으로 녹음시간 2시간 전에 출발했다. (1시간 30분이 걸린다.) 그런데 이놈의 신발이 완전 쓰레기였다. 발볼은 좁고 길이는 길고, 도무지 발에 붙어 있을 생각을 안했다. 10걸음을 채 걷지 못하는 상태였다. 도무지 걸을 수가 없었음에도, 나의 구매가 실패가 아니라고 믿고 싶어서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좀 더 걸어보려 했다.

    양말을 신으면 좀 나을까 싶어서 지하철역 편의점에서 양말을 사보기도 하고 (이때 슬리퍼를 샀어야 했다.) 손으로 샌들을 잡고 이리저리 늘리고 줄여보기도 했는데, 샌들은 여전히 3걸음 만에 발에서 튀어나가는 상태였다. 제대로 걸을 수가 없어서 나중엔 그냥 신발을 손에 들고 뛰었다. 의왕역에서 차를 놓치고 신길역에서 신발을 손에 들고 뛰었음에도 결국 녹음은 20분 정도 늦었다. 그리고 그 이틀 후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당연히 그날의 지각이 해고의 이유는 아닐테지만, 나로썬 쳐다도 보기 싫은 신발이 되었다, 나중에 잘라서 슬리퍼로도 신어 봤지만 역시 전혀 쓸모가 없는 착화감이라서 그냥 쓰레기봉투에 넣어버렸다. 이후로도 츄바스코를 신을 일은 없을 예정이다.

    어쩌다보니 정초에 그렇게 작년을 돌아보았다. 십 몇 년 만에 통장 잔고 제로를 만든 2024년은 실제로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노력하고 움직인 한 해였다. 운동하고, 공부하고, 노력해서 놀고, 읽고, 쓰고, 하려했던 모든 것을 시도했던 한 해였다. 전혀 몰랐는데, 마지막 날에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일을 구해야 한다. 아직 실직사실을 모르는 부모님을 만나야 한다. 이번 명절엔 돈을 드리지 못한다. 카드값이 잔고의 2배를 넘어섰다. 다 10년 전에 겪었던 일인데, 10년 전보다 10년이 더 늙었다.

    근데 이토록 열심히 사는 나라면, 어쩌면 괜찮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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