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가 너무 마시고 싶다. 집에서 잠들기 전에 위스키를 마신 지가 아마 2년이 넘었을 거다. 평생 술에 취미가 없었고, 집에서 가끔 마시는 맥주 정도 였는데, 나이트캡에 습관이 드니까 나중엔 저녁에 집으로 가면서도 위스키 생각만 났다. 처음엔 한잔이었던 것이 두 잔, 세 잔 늘어나더니, 점점 나이트캡이 아니라 만취해버리는 경우도 잦았다. 지난 주에 여느 때처럼 집에서 혼자 위스키를 마시고 취했는데, 그게 너무 불쾌했다. 다음 날 연인에게 집에서 혼자 마시는 건 당분간 끊겠다고 말하고 과연 그때부터 위스키를 안마셨다. 그런데 오늘 밤늦게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부터 지금까지 계속 위스키 생각만 난다. 으 한 40미리만 마시고 싶다.
지인짜 구직을 해야하는 시기다. 이렇게까지 실업급여를 끌고 올 생각은 아니었는데, 늘 그렇듯 미루고 미루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오늘은 시간을 내서 구직사이트를 들여다 봤다. 생각해보니 29살, 30살에 면접을 보러 다닐 때도 나이가 많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삶의 형태가 이리도 다양하고, 걸어가는 길에 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건데, 30살 먹은 애한테 무슨 생각으로 나이가 많다고 했을까? 구직자니까 지한테 변명을 하라는 건가? 지금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말 씹새끼가 아닐수 없다.
글을 만지는 일이라던가, 혹은 피피티가 필요한 일이라던가, 정말 하기 싫은 교수설계 쪽도 살짝 찾아봤다. 이렇게 써놓으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세상은 사실 별볼일 없는 곳이다 보니, 들여다보면 다 애매하고, 이상하고, 20대에 살짝 해봤다가 도망쳤던 일 등등이다. 물론 이력서를 보낸다고 거기서 부를지도 미지수다.
그 와중에 내 외주비를 떼어먹은 회사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구직공고를 보면서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40살, 알 수 없는 경력만 갖고 있는 구직자의 이력서를 받은 회사, 또 그런 지원자를 일단 불러보는 대표의 마음이라던가, 혹 운이 좋아 취직이 된다 해도, ‘나이가 많으니 싸게라도 뽑아 놓으면 열심히는 하겠지’ 라는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나의 첫출근이라던가,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신입을 가르쳐야 하는 회사 직원의 입장, 그리고 그 모든 걸 견디면서 내가 앉아있어야 하는 그 책상같은 걸 상상해보니. ‘아니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사실 더 험악한 생각이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나이만 먹은 채 10년 전으로 돌아간거지!?
50살 구직자가 많다고 한다. 그게 사회 문제라고 하는 다큐멘터리를 지나가다가 얼핏 봤다. 50살만 많을리가, 60, 70살도 많다. 나이가 많을 수록 자존심과 노동조건은 하락할 테지, 주차장 아저씨들이 늘 반말을 하고, 짜증을 내는 것도 그 탓일거다. 나는 어디까지 그 볼륨을 내려야 먹고살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예전엔 열정을 바칠만한 일을 찾았는데, 사실 이젠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열정은 일이 아닌 내 삶에 쏟고 싶다. 수영이라든가,
주간윤세민 말고 엽편이나 진지한 척 문장도 좀 쓰고 싶은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나 문장이 없다. 프리첼이나 싸이월드를 할 때는 노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문장이 떠오르고, 이야기기가 떠올랐는데, 젊다고 생각이 많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대사량하고 관련이 있나?
가끔 라디오든 어떤 매체에서, ‘하고 싶은 일’, ‘살고 싶은 인생’에 대한 낭만적인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살고 싶은 인생을 하기 위해 40살에 갑자기 회사를 때려쳤어요. 지금은 행복합니다.’ 같은 사연들이다. 평생을 들어왔던 말이지만, 종종 고민하게 된다. 그런게 있다면 난 지금이 기회일텐데, 왜 뭘 해야할지 모르겠지? 좋아하는 일이라… 고민을 해봤자. 산책을 하고,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고, 이런 일들로 집 임대료나 차 할부금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쨌든 돈은 벌어야 한다는 사실만 탁한 물 위로 불쑥 떠오른다.
누가봐도 불우이웃었던 시절에 집에서 무력하게 티비를 보고있는데, 모 연예인이 불우이웃 돕기에 얼마를 기부했다는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생각없이 보다가 문득 궁금했다. 저걸 본 나는 어떤 기분을 느껴야 하는 걸까? 불우이웃 모두에게 돌아갈 수 없는 저 돈은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 요즘 낭만적인 삶에 대한 다짐과 감상을 들으면 비슷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마흔살 구직자가 갖춰야 할 태도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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