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밀레니얼들에게 주입시켜 놓은 저주가 있다. 생계보다 꿈이 중요하다는 말, 어떤 삶을 살고 있든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저주다. 당연히 꿈을 이뤄 저주를 풀고 같은 말을 재생산하는 운좋은 이들도 있겠다만은 따지고 보면 ‘당신이 나와 같은 부를 가지지 못한 이유는 노력하지 않아서’ 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그래서 그 사이를 뚫고 ‘지속가능’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했을 때 조금 감탄했다.)
덕분에 밀레니얼들은 생계를 잘 꾸려나가고 있음에도,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평생 고민해야 하고, 어느 선에서는 내가 꿈을 따르지 않은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혐오를 찾지 않으면 자존감을 채우지는 못하는 요즘이들의 싸움보다야 낫겠지만 생계를 눈 앞에 두고 거울만 바라보는 저주도 꽤 위험하다.
무슨 얘기냐면, 백수생활 일 년을 채울랑 말랑 하면서 아직도 뭘 해야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는 내 얘기다. 41살의 공백은 위기이자 기회일텐데, 위기인건 알겠는데 네비가 먹통인 교차로에서 핸들을 잘못 틀게 될까봐 영 두렵다.
학원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무슨 일로 면접을 보러 오라는 건지 몰라서 일단 그냥 갔는데, 냅다 부원장 자리를 제안했다. ‘부원장은 엄청 경력이 쌓인 분들이 하는거 아닌가요?’ 라고 되물었는데, ‘별거 없어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과연 별거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부른 원장은 내가 사회에서 쌓인 이력들이 학원의 홍보에 있어서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다. 라고 말했는데, 뭔가 대단한 걸 기대하는 것 같아서 약간 무서웠다. 생각해보고 월요일에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 사실 나는 일을 주겠다는 곳이 처음이기도 하고, 발등이 이미 노릇하게 익어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남아있지 않기도 하다. 그리고 왠지 잘할 거 같은 생각도 들었다. 참! 큰 타투가 있다는 걸 숨겼는데 그게 약간 걱정이다. 근데 대체 무슨 일을 하게 되는 걸까?
뚱보가 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생애 최고 몸무게는 뭐 이미 말할 필요도 없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려면 진짜 빼야 한다. 우울하다는 이유로 밥을 시키고, 먹고 나면 후회하는 패턴이다. ‘배민자해’라는 말이 있던데, 배민을 쓰진 않지만 왓 어 잘 만든 말인지 참, 아니 불과 반년 전까지 난 수영도 하고, 러닝도 하고, 웨이트도 하던 사람이었는데!!!
우울이 꽤 깊어졌는데, 정작 의사한테는 잘 말하지 못한다. 술을 먹느라 약을 잘 못먹는다는 말을 할 수가 없기도 하고, 왠지 의사가 한심하게 생각할 거 같아서 잘 지내고 있는데 가끔만 우울하다고 말한다. 이래서야 돈을 왜 내는지 알 수 없다.
어쩐지 가족에 대해 생각할 일이 많은 3월이었다. 아버지가 ‘건즈 앤 로지스’ 내한 티켓을 예매해달라고 하신 것도 있고, 실직 이후 어머니에게 일절 연락을 안하고 있기 때문인것 같기도 하다.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해줄 것이 없기 때문에 서로를 끊고 사는 것에 익숙하다. 아버지가 고령임에도 용케 동생의 삶까지 지탱하고 계시고, 나는 어머니의 삶을 지탱하다가, 내가 떠나자 어머니께서 홀로 삶을 지탱하는 방법을 찾아 내셨다. 자신의 삶만 겨우 지탱하는 것이 미안해서 서로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이러다 누구 한 분이 아프시기라도 하면 바로 무너지는 균형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가족은 늘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살았다. 그나마 나랑 아버지가 모르는 척 넉살을 부릴 뿐,
친구가 존 버거의 책을 선물해줬다. 처음부터 문장이 굉장했다. 이민자와 노동에 대한 50년 전의 통찰인데, 우리나라로서는 아득히 먼 수준의 통찰이다. 통찰의 깊이도, 문장의 깊이도 아득했다. 우울하고 텅 빈 이번 주말에 큰 위안이다.
요즘 멋진 걸 만드는 꾸준한 사람들을 잔뜩 본다. 어딜 둘러봐도 멋있는 걸 만드는 사람들 투성이다. 그 사이에서 종종 우울하다. 멋있는 걸 만들고 싶은데 영 떠오르는 게 없다. 가능성을 평가받기에도 미안한 나이인데, 아직 멋있는 걸 만들지 못한다니, 어쩌면 이대로 끝난걸까 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살아만 있다면 그럴리야 없겠다만, 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까? 돈이 없어서 그런가?
벌이는 없고, 주유카드도 신용카드인 탓에 요즘엔 시동을 걸 때마다 빚을 지는 느낌이다. 따지고 보면 집 임대료도, 관리비도 카드로 결제된다. 3월은 숨 자체가 빚이다. 어쩐지 사랑과 믿음도 빚인거 같아서, 자주 불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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