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기분이 심하게 우울하다. 이유를 모르겠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너무 지나치게 우울하여 기록해둔다.
취업이 결정되었다. 돈은 적지만 막연히 그려왔던 방향 중에 하나고 학원 강사를 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교재제작과 출판 쪽으로 넘어간다고 해서, 가능성이 많이 열려있는 걸 선호하는 나한테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그전에 부원장 자릴 제안했던 학원을 내치고 선택했다. 나한테 선택권도 있었고, 위치도 가깝고, 무엇보다 경제적 마지노선을 넘어 간 후에 결정이 되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한다.
그런데 어제부터 기분이 너무 안좋다. 그래서 어제도 몇시간을 걸었는데 이유를 알 수 없다. 집에 돌아와서도 소파에 누워있다가 우울감을 이겨보려고 밤에 음식을 시켜먹었다. 그게 체하는 바람에 손을 주무르며 방안을 한참 걸어다녔다.
오늘 아침에는 아예 숨이 가쁠 정도였다. 공황에 가깝게 기분이 가라앉아서 기분을 풀 수 있는 모든 걸 시도해봤다. 눈뜨자마자 약도 먹고, 산책도 해봤고, 부러 커피도 돈을 주고 사먹어보고, 집에서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그리고 혹시 뭘 쓰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키보드 앞에도 앉아본다. 빨리 쓰고 회사에서 요청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사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것부터 해야 했다.
돈이 얼마나 급한지 내가 실감을 못해서 그런가? 싶어서, 앉아서 카드값 계산도 했다. 역시 예상보다 많이 나와서 주카드의 리볼빙 신청을 했다. 이자가 15%라니 불법 아닌가? 그래도 취업을 했으니 분명히 다행인데 어쩐지 기분이 여전히 좋지 않다. 내가 뭘 못할리는 없으니 컨베이어 벨트 위에 앉아만 있으면 일들은 어떻게든 풀려 나갈거다. 그런데 가라앉은 기분과 크게 뛰는 심장이 멎지 않는다.
입사가 결정 될 때 마다 내가 이랬던가 기억을 돌려봤다. 그랬던 적도 있고 아무렇지도 않았던 적도 있다. 기분이 너무 나빠 8시간 정도를 걸었던 적도 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못나가겠다고 했다. 또, 기분이 너무 안좋아서 성경을 펼쳐 읽었던 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외려 기분이 좋았던 적도 있었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고 내일 출근을 해야 하네,’ 라는 마음만 있었던 적도 있었다. 이번엔 뭐가 문제일까, 복장이 걱정일까? 모자를 쓸 수 있고, 복장을 편히 입는 게 나한텐 생각보다 중요한데, 삶의 방향이 종횡무진이다 보니, 이게 생각보다 지키지가 쉽잖다. 그것 때문일까? 하지만 그러게엔 정장도 숱하기 입어 보지 않았나, 한여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풀정장으로 일을 한 적도 있는데,
어쨌든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타야 한다. 서둘러 서류를 꾸려 보내고, 오늘 집에서 할 일들을 하고, 또 성남에 가서 할 일을 하고, 내일 일어나 정장을 입고, 첫 출근을 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좆밥 취급을 받고, 시키는 걸 하면 된다. 그리고 다시 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서 위스키를 마시면 된다. 기분이 좋던 나쁘던 일단은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이리 불안하고 우울한지 알 수 없다. 숨까지 가쁠 일인가? 알 수 없어서 일부러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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