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쯤이었나, 처음에 주간윤세민을 시작했을 때는 40대 싱글 남성의 삶이 좌충우돌 얼마나 재밌게 굴러가는가를 쓰려는 의도였다. 그땐 수영과 러닝을 막 시작했을 때이기도 하고, 서울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혼술에 몇 십만원을 쓰던 시기다 보니 재밌는 일도 많을거고, 오히려 거꾸로 계기가 되어 혼자 여행도 떠나보고 여행기도 쓰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후 삶이 크게 드리프트를 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돈이 사라져버리고, 우는 소리 몇번 하는가 싶더니 늘 그렇듯 신세한탄 페이지가 되어버렸다. 사실 그렇게 된 이유는 돈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내 버릇에 기인하는 편이 더 크다.
말을 길게 하면 신세한탄을 하는 버릇도 버릇이지만, 주로 새벽에 술을 먹으면서 쓰고 다 쓸 때쯤 만취다 보니 아무래도 문체가 새벽 감성을 띌 수 밖에 없다. 거기다 밤마다 술먹고 염병하는 스토리를 올리니까 요즘 주변인들에겐 내 상태가 아주 안좋은 것으로 여겨지나 보다. 이것도 쌓이면 안되겠다 싶어서 오늘은 일부러 오전에 그것도 엔진오일을 갈러 온 정비센터의 휴게실에서 쓰고 있다.
드디어 내가 출근하는 학원 지점으로 이동을 했다. 지난 한달간 엉뚱한 지점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전임 선생님의 마지막 출근일에야 이쪽으로 옮겨왔다. 상식적으로 처음부터 내가 근무할 지점에서 대기를 해야 인수 인계도 받고 아이들이랑 얼굴도 익히고, 진도나, 수업 방향도 맞출 수 있을 텐데, 전혀 엉뚱한 지점에서 한달동안 엉뚱한 시간만 보내다가 이쪽 지점으로 옮겨왔다. 요는 전임 강사와 내가 만나면 안되는 것이었다.
읽으시는 분들도 사회생활들 하셨을테니 원인을 짐작하시겠지만 학원 내 정치탓이었다. 안에서는 ‘저 강사가 학원에 대해 나쁜 말을 하고 다닌다.’, 나가는 강사는 ‘누가 중간에서 이간질을 한다.’ 뭐 그런 이유때문에 나랑 전임강사를 못만나게 한거다. 그거야 내 알바는 아니다만 출근하는 곳 분위기가 좆같고, 전임도 없이 바로 아이들을 대면하고 첫 수업을 해야 한다는 건 나한테 피해다. 그렇다고 투입이 빨리 된 것도 아니고, 한달동안 허송세월 보내다가 갑자기 투입되니까 급히 이것저것 할일이 많아졌다. 어쨌든 빨리 일을 시작해야지, 한달이나 대기를 하니까 긴장만 길어지고, 여러모로 마음이 불편했다. 사진은 학원에 붙어있던 종이다. 학원 커리큘럼과 중등 국어, 교과서 등을 맹렬히 공부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나라 교과서가 매우 훌륭하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만약 내게 자식이 있다면, 아무리 애원해도 국어학원만큼은 결코 보내지 않을 것이다. 문학을 이렇게 배운다는건 인생에 큰 불행이다.
출근이 늦으니까 아침 시간이 생겼다. 잠에서 깨어나서 활동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나로서는 꽤 괜찮은 시간이다. 오전의 볕을 받으며 산책도 할 수 있고 최근엔 명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가부좌를 트는건 아니고 그냥 창문을 열어놓고 바깥소리를 들으며 1~2시간 정도 눈감고 누워있는 거다. 처음엔 잠이 덜깨서 시작했는데, 누워있다보면 정신도 맑아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명상이라니… 원래 눈을 감고 있으면 불안이 피어오르는 탓에 때문에 기도도 길게 못하는 데, 어째 요상한 버릇이 생겼다. 일이 좀 손에 익으면 오전에 운동도 하고, 글도 쓰고 많은 걸 좀 해야겠다. 이미 주 2회 오전 수영도 등록했다. (그 와중에 주 3회 수영은 광클로 놓침)
한가지 고민을 있다면 퇴근을 하고 11시쯤에 뭔가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 컨텐츠가 먹는거 밖에 없다는 거다. 바로 자려고도 해봤는데, 그래도 뭔가 아쉬워서 바로 잠이 오지는 않고, 그 시간에 만날 사람도 없고 그냥 소파에 누워있다보면 먹고싶은거 밖에 생각이 안난다. 살을 빼야 해서 먹지는 못하고 그대로 릴스나 보거나, 위스키를 마시다 잠이 든다. 이 시간에 뇌를 비우고 행복감을 채울만한 뭔가가 있으면 좋겠는데,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찾기가 쉽잖다. 일기를 써볼까?
어제, 오늘은 쉬는 날이었는데 놀랍게도 계획한 일을 방금 전에 모두 해냈다. 내가 이걸 왜 대견해 하냐면, 계획했던 일들이 마포 병원가기, 머리 자르기, 성남으로 가서 커피 볶기, 춘천(!) 다녀오기, 송파에 물건 전달하기, 엔진오일 갈기, 세차하기, 아버지랑 밥먹기, 주간윤세민 쓰기 까지였는데 방금 전에 이 모든 일을 다 해냈다. 그 와중에 평냉까지 먹고 말이야! 이제 내일 출근만 하면 된다니 세상에! 보람이 하나도 없잖아!!!

https://www.instagram.com/p/DJBvQoPJgXuZ4oC7FRiVGj97Wt1_iyxu0JGMsw0/?img_index=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