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다. 새벽에 쓰면 안되는데,
하루종일 문장을 고민하는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이미 죽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뭐 그래도 쓰는 수 밖에 없으니 별 상관은 없다.
3월이었나, 아버지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건즈 앤 로지스 내한 티켓 예매를 좀 해달라는 거였다. 생각해보니 아버지에게 받은 첫 부탁이 아니었나 싶다. 노동절 저녁 7시니, 어떤 직장을 구하든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필 학원에 취업해버리는 바람에 나는 못가게 되었다. 학원에 물어보았는데, 안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칠순아버지를 혼자 보낼 순 없어서 결국 동생을 대신 보냈다. 잘 보고 오신 모양인지 다음날 동영상까지 보내오셨다. 그러고 보니 56년생 메탈키즈 아버지 인생에 첫 라이브였다. 그걸 내가 보내드리다니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주말엔 첫 수업을 했다. 그나마 아이가 5명 이하인 수업은 수월하게 진행이 되었다. 질문으로 아이를 궁지에 몰아넣고 답을 끄집어내 글을 쓰게 하는 건 예전에 했던 일이니까 할 수 있다. 문제는 애가 15명 이상인 경우였다. 나름 영상도 준비하고 피피티도 준비했는데 반응이 시원찮았고, 준비한 걸 다 보여줬는데도 수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강의실을 꽉 채운 눈빛 앞에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겨우 수업을 마쳤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이 있을리 없다.
강의를 하는 중에 ‘꿈도 있었고, 노력도 했는데, 왜 여기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생이라는게 참 묘한 나이라는 걸 알았다. 무슨 말이냐면, 코딱지를 먹는 아이와 ‘하기 싫은데요?’ 라고 말하는 중2병이 같이 앉아 있다는 이야기다. (둘다 실제로 있다.) 요약해서 말하면 ‘방구는 왜 뿡 소리가 나요? 꺄르르’ 하는 아이와 ‘인생을 왜 열심히 살아야 하죠?’ 라는 질문이 공존한다는 거다. 아마 전임 선생님은 ‘방구’에 맞춰 수업을 진행했고, 원장님은 ‘인생’에 맞춰 수업을 진행하길 원하는 것 같다. 어느 쪽에 맞춰서 수업을 진행하든 일단 아이들에게 나는 빌런이 되어있는 상태다. 전임선생님이 수업을 워낙 재미있게 진행하셨나 보다. 부루마블 토론이 뭐야 대체….
글쓰기를 하는데, 옆자리 아이 껄 통으로 배낀 애도 있다. 살펴보니 저번 중간고사에서 43점을 받은 아이다. 중등국어를 43점을 받은 건 태도의 문제지, 지능의 문제가 아니다. 늘 순간만 모면하며 살아왔다는 의미인데, 나도 걔를 그냥 모른 척할지, 아니면 물고 늘어져 볼지 고민이다. 딴걸 존나 잘하는 애일수도 있잖아?
진단능력이 있는건 아니지만 자폐스펙트럼이 보이는 아이도 있다. 한글자도 안쓰고 있길래 첫 문장을 쓰게 하려고 질문을 50개쯤 던졌는데, 환한 미소만 보고 목소리를 아직 듣지 못했다. ‘좋다’, ‘싫다’ 두글자만 써보자고 했는데 ‘나는’ 만 쓰고 더이상 쓰지 못했다. (어쨌든 두 글자는 썼다.) 다른 선생님한테, 그 아이가 병원에 다니고 있는지 물었는데, 아이의 엄마가 ‘난 그런건 잘 모르겠어요.’ 라면서 부정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그 선생님도 어머니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돌아돌아 접근을 해봤나보다.) 그런 주제에 학원이 애한테 뭘 해줄거라 기대하고 돈을 내고 보낸다니… 이해하기 어려운 신앙이다.
상식 밖에 일도 많이 목격하고 있다. 연휴기간 내 연락이 두절되어 놓고 어린이 날 밤 10시에 전화로, 우리 애 놓친 진도를 어떡할거냐고 따지는 부모도 있다. (덕분에 난 새벽에 동영상 강의를 찍으러 갈 뻔 했다.) 뭐 이런 업계가 있나… 하는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정도 비상식은 내가 경험한 모든 업계에 다 있었다. 그래 생각해 보면 돈을 버는 일은 결국 비상식과 맞서는 일이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GPT를 활용하는 경우가 잦아서 결국 GPT 유료 결재를 했다. 오늘 사주를 물어봤는데 지금까지는 과정이었고 다음달 부터 잘 풀린단다. 전형적인 바넘효과다. GPT가 바넘효과를 학습한건지, 사주가 바넘효과를 기본으로 구성된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참 현명하다. 내가 기분이 좋아졌으니 말이다.
어쨌든 학원이 주가 되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다니고 있다. 세금도 3.3% 렸다. 그냥 알바라는 생각으로 다니는 편이 결과도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다른 메이저가 있어야 하는데 하루종일 문장을 고민해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래도 별 수는 없으니 일단 쓰긴 써야 한다.

https://www.instagram.com/p/DJUtiwUzxSSTwCDN7Vj380rapFNRRv9mwId-QA0/?img_index=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