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윤세민

제목202412262025-07-02 03:34
작성자 Level 10

주간윤세민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을 때 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일단 일주일이 넘었고, 그리고 뭘 했는지 기억이 안나고, 그래서 다이어리를 샀는데 당연하다시피 안쓴게 여전하고, 그리고 ‘주간윤세민 말고 다른 글도 좀 써야지’ 했던 다짐도 생각나고, 뭘 쓸까… 생각을 하다 보면 항상 부족했던 거, 못한 거, 새롭게 다짐할 거만 떠오른다.

‘반성하지 말자’, ‘다짐하지 말자’, 일기나 주기를 쓸 때의 유일한 다짐이다. 왜냐면 돌아볼 때 마다 늘 못한걸 떠올리고 또 다짐하는 문장만 반복되는게 짜증스러운 탓이다. 왜인지 늘 반사적으로 못한 것만 생각난다. 정말로 못하고 있어서 인가? 그럴수도 있지 뭐,

저번 주기를 쓴 다음 날, 여의도로 가서 탄핵안이 가결되는 걸 지켜봤다. 그리고 다음 날인 15일 밤에는 혼자 용산으로 <아키라> 심야영화를 보러갔다. 셀애니메이션의 극치를 봐서 눈은 즐거웠지만 내용적으로는 다소 실망, 일본에서 극의 궁극은 왜 항상 내면을 향할까? 어린이들의 합창같은 음악이 나오면서 화면이 밝아지는 그 순간은 에반게리온에서도, 지브리에서도 항상 지루하다.

18일 수요일엔 모처럼 약속이 있어서 사당에서 술을 마셨다. 맨날 자리에서 맥주만 마시다 보니 배만 더부룩하고, 또 그렇다고 소주로 취하기는 싫고, 어영부영 술도 덜 된 채로 버스를 잘 챙겨타서 무사히 왔다.

22일 일요일 밤에는 다음날 수원에서 일정이 있는 K형이 집에 와서 하룻밤에 잤는데, 40대 남자 둘이서 할 것이란 왜 이리 없는지, 게임을 하다말다, 대화를 하다말다, 둘이 요아정이나 시켜서 나눠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23일엔 독서 모임이 있었다. 책은 테드 창의 소설집, 살면서 수도 없이 추천을 받아왔는데 독서모임 덕에 드디어 읽었다. 첫 단편부터 사로잡혀 재미있게 읽었다. 놀라운 상상과 통찰이 유려한 문장으로 이어져서 아주 잘 차려진 독서를 했다. 좋은 작품을 읽을 때마다, 더 빨리 못 본걸 아쉬워 하는데, 이건 지금보다 일찍 봤으면 이만큼 좋아하지 않았을 거 같다.

모임은 송년회를 겸해서 책 얘기보다는 그냥 모인 것 자체가 주가 되어서 만취자가 속출한 모임이 되었다. 난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탄 소맥도 받아 먹고, 3차에 가서 와인까지 먹고는 마지막에는 모처럼 좀 취했다. 그래서 아무래도 좀 실수를 하지 않았나 싶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어김없이 인생네컷 사진이 주머니에 있었다 (술버릇이다.) 그리고 숙취로 하루 종일 고생했다.

아! 그리고 다음 모임의 책을 무려 카스테라로 정했다!!! 캬하하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성공회 신자인 연인을 따라서 성공회 동대문교회로 성찬례를 드리러 갔다. 이렇게 말하는 게 맞나? 생전 처음 드려보는 방식의 예배를 한참을 헤매면서 따라갔다. 교회는 크지 않았고, 본당엔 20명 남짓의 신도분들이 계셨다. 그나마도 거의 노인분들이었다. 어색하게 앉아 두리번 두리번 대다 보니 내가 1000명 이상의 교회에서만 예배를 드렸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성탄절은 더했지, 그렇다보니 조용한 동네의 작은 교회에서 조용하게 성가를 부르면서 맞는 성탄절이 꽤나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적 크리스마스 새벽에 혼자 깨어나 동네 교회의 새벽송을 듣는 느낌이었다. 그 여운을 가지고 성탄절 오전의 성찬례도 갈 예정이었는데, 여운이 너무 길었는지, 늦잠을 자서 못갔다.

그리고 성탄절 당일에는 연인의 친구에게 초대를 받아서 부평의 어느 집으로 가 파티를 했다. 피자먹고 술마시고 영화보고 포커치고, 그 집 거실에서 잤다. 이 정도면 괜찮은 성탄이지 뭐, 내일과 모레는 일정이 없어서 빨래나 할 예정이다. 집 구조를 한 번 더 들어엎고 싶은 생각이 슬쩍 슬쩍 드는데, 이젠 살짝 엄두가 안난다. TV다이를 팔고 침실에 책상을 들일까?

참 요즘 운전하면서 영 들을게 없어서 오늘 웰라를 결제했다. 그리하여 남들은 오징어게임2 정주행을 하는 밤에 혼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들으면서 집에 왔다. 이따가 자면서도 들어야지,

5일이 남은 올해 중 일정이 있는 날은 송년회 이틀이다. 남은 날에 뭘 하면 좋을까… 를 고민하는 이유는 가족한테 연락해야 한다는 마음속 부담감을 잊기 위해서다. 밥이라도 한 끼 먹어야 하나 싶은데, 영 날이 갈수록 어색해진다. 내가 먼저 연락을 안하면 연락도 안하시는 분들이니 죄책감은 오롯하게 내 몫이다. 우리 모두 평생을 온 힘을 다해 살았는데, 무슨 놈의 죄책감을 이렇게 마음속에 쌓아두고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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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윤세민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을 때 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일단 일주일이 넘었고, 그리고 뭘 했는지 기억이 안나고, 그래서 다이어리를 샀는데 당연하다시피 안쓴게 여전하고, 그리고 ‘주간윤세민 말고 다른 글도 좀 써야지’ 했던 다짐도 생각나고, 뭘 쓸까… 생각을 하다 보면 항상 부족했던 거, 못한 거, 새롭게 다짐할 거만 떠오른다.

    ‘반성하지 말자’, ‘다짐하지 말자’, 일기나 주기를 쓸 때의 유일한 다짐이다. 왜냐면 돌아볼 때 마다 늘 못한걸 떠올리고 또 다짐하는 문장만 반복되는게 짜증스러운 탓이다. 왜인지 늘 반사적으로 못한 것만 생각난다. 정말로 못하고 있어서 인가? 그럴수도 있지 뭐,

    저번 주기를 쓴 다음 날, 여의도로 가서 탄핵안이 가결되는 걸 지켜봤다. 그리고 다음 날인 15일 밤에는 혼자 용산으로 <아키라> 심야영화를 보러갔다. 셀애니메이션의 극치를 봐서 눈은 즐거웠지만 내용적으로는 다소 실망, 일본에서 극의 궁극은 왜 항상 내면을 향할까? 어린이들의 합창같은 음악이 나오면서 화면이 밝아지는 그 순간은 에반게리온에서도, 지브리에서도 항상 지루하다.

    18일 수요일엔 모처럼 약속이 있어서 사당에서 술을 마셨다. 맨날 자리에서 맥주만 마시다 보니 배만 더부룩하고, 또 그렇다고 소주로 취하기는 싫고, 어영부영 술도 덜 된 채로 버스를 잘 챙겨타서 무사히 왔다.

    22일 일요일 밤에는 다음날 수원에서 일정이 있는 K형이 집에 와서 하룻밤에 잤는데, 40대 남자 둘이서 할 것이란 왜 이리 없는지, 게임을 하다말다, 대화를 하다말다, 둘이 요아정이나 시켜서 나눠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23일엔 독서 모임이 있었다. 책은 테드 창의 소설집, 살면서 수도 없이 추천을 받아왔는데 독서모임 덕에 드디어 읽었다. 첫 단편부터 사로잡혀 재미있게 읽었다. 놀라운 상상과 통찰이 유려한 문장으로 이어져서 아주 잘 차려진 독서를 했다. 좋은 작품을 읽을 때마다, 더 빨리 못 본걸 아쉬워 하는데, 이건 지금보다 일찍 봤으면 이만큼 좋아하지 않았을 거 같다.

    모임은 송년회를 겸해서 책 얘기보다는 그냥 모인 것 자체가 주가 되어서 만취자가 속출한 모임이 되었다. 난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탄 소맥도 받아 먹고, 3차에 가서 와인까지 먹고는 마지막에는 모처럼 좀 취했다. 그래서 아무래도 좀 실수를 하지 않았나 싶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어김없이 인생네컷 사진이 주머니에 있었다 (술버릇이다.) 그리고 숙취로 하루 종일 고생했다.

    아! 그리고 다음 모임의 책을 무려 카스테라로 정했다!!! 캬하하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성공회 신자인 연인을 따라서 성공회 동대문교회로 성찬례를 드리러 갔다. 이렇게 말하는 게 맞나? 생전 처음 드려보는 방식의 예배를 한참을 헤매면서 따라갔다. 교회는 크지 않았고, 본당엔 20명 남짓의 신도분들이 계셨다. 그나마도 거의 노인분들이었다. 어색하게 앉아 두리번 두리번 대다 보니 내가 1000명 이상의 교회에서만 예배를 드렸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성탄절은 더했지, 그렇다보니 조용한 동네의 작은 교회에서 조용하게 성가를 부르면서 맞는 성탄절이 꽤나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적 크리스마스 새벽에 혼자 깨어나 동네 교회의 새벽송을 듣는 느낌이었다. 그 여운을 가지고 성탄절 오전의 성찬례도 갈 예정이었는데, 여운이 너무 길었는지, 늦잠을 자서 못갔다.

    그리고 성탄절 당일에는 연인의 친구에게 초대를 받아서 부평의 어느 집으로 가 파티를 했다. 피자먹고 술마시고 영화보고 포커치고, 그 집 거실에서 잤다. 이 정도면 괜찮은 성탄이지 뭐, 내일과 모레는 일정이 없어서 빨래나 할 예정이다. 집 구조를 한 번 더 들어엎고 싶은 생각이 슬쩍 슬쩍 드는데, 이젠 살짝 엄두가 안난다. TV다이를 팔고 침실에 책상을 들일까?

    참 요즘 운전하면서 영 들을게 없어서 오늘 웰라를 결제했다. 그리하여 남들은 오징어게임2 정주행을 하는 밤에 혼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들으면서 집에 왔다. 이따가 자면서도 들어야지,

    5일이 남은 올해 중 일정이 있는 날은 송년회 이틀이다. 남은 날에 뭘 하면 좋을까… 를 고민하는 이유는 가족한테 연락해야 한다는 마음속 부담감을 잊기 위해서다. 밥이라도 한 끼 먹어야 하나 싶은데, 영 날이 갈수록 어색해진다. 내가 먼저 연락을 안하면 연락도 안하시는 분들이니 죄책감은 오롯하게 내 몫이다. 우리 모두 평생을 온 힘을 다해 살았는데, 무슨 놈의 죄책감을 이렇게 마음속에 쌓아두고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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