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윤세민

제목202406192025-07-01 12:35
작성자 Level 10

무제.jpg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 정신없는 스케줄이 이어졌다. 요즘엔 ‘보관된 스토리’를 확인하지 않으면 이삼일 전의 일도 기억이 안난다. 여전히 나 이외의 사람들이 읽기에 가치가 있는 내용은 아닌데 많은 분들이 이 불친절한 플랫폼에서 이 긴 글을 읽어주어 참 감개가 무량하고 감사하다. (진심이다.)

일본에서 돌아온 다음날인 목요일에는 보드게임 모임이 있었다. (원래는 추리소설 모임이었다.) 낮에 병원 예약도 있었는데 그건 새카맣게 까먹었다. 대신 일 년에 몇 번 안입는 흰바지를 입었다. 대중교통 루트가 괜찮아 버스를 타고 강남으로 갔다. (가는 길에 첫번째 사진을 찍었다) 모임은 즐거웠고 다들 술을 챙겨 오셔서 술도 좀 먹었다. 최근 술 먹으면 실수를 꼭 하는데 그 날도 아마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무사히 집으로 온 거 같다.

금요일엔 오전에 용산에 가서 수리를 맡긴 키보드를 찾아왔고, 집으로 와 좀 쉬다가 저녁엔 성남에서 기혁형이랑 운동을 하기로 했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버스 정류장으로 느긋이 걸어갔는데 (30분 걸림) 도착해서 버스 도착 3분 전에야 버스카드를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버스를 타야 약속시간에 맞춰서 도착하는데, 지갑이 없는 상황, 3초 생각하다가 전력으로 집까지 뛰어가서 버스카드 대신 차키를 챙겨서 시동을 걸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매드맥스처럼 운전해서 성남에 도착, 당연히 약속시간은 30분 정도 늦었다. 그래도 화 안낸 기혁형이랑 가슴을 조지고 퇴근한 민주를 불러내어 폭식을 했다. 정말이지 돈을 아낀다는 말이 무색한 일상이 아닐 수 없다.

의사는 ADHD가 아니라는 의견을 고집하는데, 그러기엔 난 요즘에도 너무 많은걸 깜빡하고, 약속시간에도 자주 늦는다. 병원을 바꿔야 할까?

토요일은 은정누님, 지훈형님과 낮술 약속이 되어있었다. 간만에 맛있는 평냉을 먹었다. 누님 형님이 퇴사에 대해서 자꾸 아쉬워 하셔서, 하루종일 감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몸둘 바를 모른채 하루 종일 맥주를 마셨다. 12시에 술을 시작해서 5차까지 마셨는데, 난 3차쯤에 이미 취했고, 이때도 아마 뭔가 혀가 길어 실수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종일 감사하고 즐거운 낮이었는데, 계속 맥주를 마셔서 배가 터질 것 같았다. 다음엔 소주를 마셔야지... 성갑이 형은 왠지 하루종일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 파하고 나서 청량리에서 혼자 걷다가 여기저기 전화를 했는데, 그러다 폰 배터리가 딱 끊어졌다. 덕분에 집까지 2시간 동안 폰 없이 와야했다. 집에 와서 바로 기절

일요일엔 입주한지 3년 만에 용덕형과 성수와 집들이가 예정되어 있었다, 슬슬 집을 정리하면서 낮을 보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성수가 일산에서 오기 너무 힘들 것 같아 홍대입구로 데리러 갔다. 오는 김에 성남에 들러 용덕이형까지 픽업해서 집에서 셋이 술을 먹었다. 다음날 잠자리가 불편했다고 해서, 좀 미안했다. 뭐라도 깔아줄걸

월요일엔 셋이 그대로 용덕형네 까페로 출근, 까페에서 시간을 죽였다. 나는 술병이 나 계속 설사를 하느라 바빴는데, 그래서 둘은 내가 기분이 안 좋은줄 알았댄다. 앉아있자니 속만 뒤집히고 죽겠어서 산책이나 하겠다고 나가서 예전에 살던 집 쪽으로 걸어봤다. 용덕형네 까페가 내 유년시절 동네에 있다. 재개발에 대한 잔인한 소문만 무성하고 20년 전 모습 그대로 늙기만 하고 있는 동네다. 간판만 바뀐 건물들도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10년 전에 찾아 왔을 땐 그래도 동네가 그대로 있다는 게 고맙고 기분이 괜찮았는데, 이번엔 돌아보면서 괜히 유년기에 안좋았던 기억들만 새록새록 떠올랐다. 가만 두면 추억도 부패하는 구나 싶었다.

화요일은 오늘인데 집에서 하루종일 청소를 하고, 뭘 잔뜩 쳐먹고, 세차를 하러 다녀왔다. 문득 차에 붙어있는 아파트 스티커를 보다가, 내가 은전 한 닢처럼 저 스티커를 갖고 싶어 했던 게 기억났다. 예전부터 약간 중산층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차에 아파트 스티커를 붙이고 차단기 밑으로 지나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도어락을 눌러 집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LH 임대 아파트지만, 이 집에 들어오면서, 문득 그런 욕구를 가졌던게 기억이 났다.

함께 소박한 미학을 추구했던 친구들이 들으면 배신감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나도 니네집 재산을 알았을 때 배신감을 느꼈으니 이쯤은 땐땐이다 싶다. (걔네들은 아직 ‘부자가 아님’과 ‘가난’을 구분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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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돌아온 다음날인 목요일에는 보드게임 모임이 있었다. (원래는 추리소설 모임이었다.) 낮에 병원 예약도 있었는데 그건 새카맣게 까먹었다. 대신 일 년에 몇 번 안입는 흰바지를 입었다. 대중교통 루트가 괜찮아 버스를 타고 강남으로 갔다. (가는 길에 첫번째 사진을 찍었다) 모임은 즐거웠고 다들 술을 챙겨 오셔서 술도 좀 먹었다. 최근 술 먹으면 실수를 꼭 하는데 그 날도 아마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무사히 집으로 온 거 같다.

    금요일엔 오전에 용산에 가서 수리를 맡긴 키보드를 찾아왔고, 집으로 와 좀 쉬다가 저녁엔 성남에서 기혁형이랑 운동을 하기로 했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버스 정류장으로 느긋이 걸어갔는데 (30분 걸림) 도착해서 버스 도착 3분 전에야 버스카드를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버스를 타야 약속시간에 맞춰서 도착하는데, 지갑이 없는 상황, 3초 생각하다가 전력으로 집까지 뛰어가서 버스카드 대신 차키를 챙겨서 시동을 걸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매드맥스처럼 운전해서 성남에 도착, 당연히 약속시간은 30분 정도 늦었다. 그래도 화 안낸 기혁형이랑 가슴을 조지고 퇴근한 민주를 불러내어 폭식을 했다. 정말이지 돈을 아낀다는 말이 무색한 일상이 아닐 수 없다.

    의사는 ADHD가 아니라는 의견을 고집하는데, 그러기엔 난 요즘에도 너무 많은걸 깜빡하고, 약속시간에도 자주 늦는다. 병원을 바꿔야 할까?

    토요일은 은정누님, 지훈형님과 낮술 약속이 되어있었다. 간만에 맛있는 평냉을 먹었다. 누님 형님이 퇴사에 대해서 자꾸 아쉬워 하셔서, 하루종일 감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몸둘 바를 모른채 하루 종일 맥주를 마셨다. 12시에 술을 시작해서 5차까지 마셨는데, 난 3차쯤에 이미 취했고, 이때도 아마 뭔가 혀가 길어 실수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종일 감사하고 즐거운 낮이었는데, 계속 맥주를 마셔서 배가 터질 것 같았다. 다음엔 소주를 마셔야지... 성갑이 형은 왠지 하루종일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 파하고 나서 청량리에서 혼자 걷다가 여기저기 전화를 했는데, 그러다 폰 배터리가 딱 끊어졌다. 덕분에 집까지 2시간 동안 폰 없이 와야했다. 집에 와서 바로 기절

    일요일엔 입주한지 3년 만에 용덕형과 성수와 집들이가 예정되어 있었다, 슬슬 집을 정리하면서 낮을 보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성수가 일산에서 오기 너무 힘들 것 같아 홍대입구로 데리러 갔다. 오는 김에 성남에 들러 용덕이형까지 픽업해서 집에서 셋이 술을 먹었다. 다음날 잠자리가 불편했다고 해서, 좀 미안했다. 뭐라도 깔아줄걸

    월요일엔 셋이 그대로 용덕형네 까페로 출근, 까페에서 시간을 죽였다. 나는 술병이 나 계속 설사를 하느라 바빴는데, 그래서 둘은 내가 기분이 안 좋은줄 알았댄다. 앉아있자니 속만 뒤집히고 죽겠어서 산책이나 하겠다고 나가서 예전에 살던 집 쪽으로 걸어봤다. 용덕형네 까페가 내 유년시절 동네에 있다. 재개발에 대한 잔인한 소문만 무성하고 20년 전 모습 그대로 늙기만 하고 있는 동네다. 간판만 바뀐 건물들도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10년 전에 찾아 왔을 땐 그래도 동네가 그대로 있다는 게 고맙고 기분이 괜찮았는데, 이번엔 돌아보면서 괜히 유년기에 안좋았던 기억들만 새록새록 떠올랐다. 가만 두면 추억도 부패하는 구나 싶었다.

    화요일은 오늘인데 집에서 하루종일 청소를 하고, 뭘 잔뜩 쳐먹고, 세차를 하러 다녀왔다. 문득 차에 붙어있는 아파트 스티커를 보다가, 내가 은전 한 닢처럼 저 스티커를 갖고 싶어 했던 게 기억났다. 예전부터 약간 중산층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차에 아파트 스티커를 붙이고 차단기 밑으로 지나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도어락을 눌러 집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LH 임대 아파트지만, 이 집에 들어오면서, 문득 그런 욕구를 가졌던게 기억이 났다.

    함께 소박한 미학을 추구했던 친구들이 들으면 배신감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나도 니네집 재산을 알았을 때 배신감을 느꼈으니 이쯤은 땐땐이다 싶다. (걔네들은 아직 ‘부자가 아님’과 ‘가난’을 구분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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