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윤세민

제목202407132025-07-01 14:11
작성자 Level 10

무제.jpg
 


저장 아이콘이 왜 요상한 네모 도형인지 모양인지 모르는 것처럼, 혹은 전화 아이콘이 왜 바구니같이 생긴 도형인지 모르는 것처럼 고시원의 이름이 왜 고시원인지 모르는 세대도 있을 거다.

고시원의 원래 의미라면 ‘꿈담은’ 이란 수식은 식상할 정도로 어울리는 이름이겠지만, 실제 저 안을 채우고 있는 일용직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을 수식하기엔 너무 빈약한 이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다 곧 너무 건방진 생각이다 싶어서 황급히 접어 넣었다. 사실 세상의 모든 고시원을 뒤집어 탈탈 털어보자면 꿈밖에 나올 것이 없을 수도 있겠다. 이것도 건방진가?

이번주에 예정된 귀여운 일정의 3/4이 지났다. 월요일엔 워드프레스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봐야겠다 싶어서(할 줄 모른다), 수십 개의 웹페이지를 번역하고 수십 개의 블로그 글을 읽어가면서 약 4시간 만에 계정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한 4시간쯤 더 들어서 게시판 하나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원랜 머릿속에 생각해 놨던 디자인이 있었는데 디자인은 언감생심 꿈도 못꾸고, 폰트조차도 바꾸지 못했다. 그 와중에 호스팅 서비스도 결제하고, 도메인도 샀는데, 이리저리 만지다가 뭘 잘못건드려 만들어 놓은게 싹 다 날라가고 관리자 권한도 잃었다. 그토록 중요한 일이었다면 경고 하나쯤은 보내줘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대처 방법을 찾아보다 모든걸 초기화, 처음부터 다시 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있는 계정, 이미 있는 도메인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또 2시간 정도 알아보다 환불을 진행, 모든걸 백지화시키는데 성공했다. 꽤 귀한 실패를 한 하루였다. 홈페이지는 굳이 만들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화요일엔 뭘했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난다. 수요일엔 민주가 일하고 있는 골프장 청소 알바가 예정되어있었고, 가서 열심히 청소를 했다. ㄱ형 건이형이랑 같이 했는데, 형들이 모두 열심히 한 것은 물론이고, 민주가 책임감을 갖고 가장 열심히 일하는 걸 보고 새삼 다시 봤다. 영 또라이인줄만 알았는데...

목요일엔 기혁형이 사회를 보는 랩 경연대회가 있는 날이라 구경을 다녀왔고, 오랜만에 JJK를 만나서 근황에 대한 수다를 떨었다. 얼마나 오랜만이냐면 한 12년 만인거 같다.

금요일인 오늘은 추리소설 모임에서 크라임씬 방탈출 모임이 있었다. 다들 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마련된 자리였고, 열정을 갖고 재미있게 즐겼다. 근데 나는 세트에서 먼지가 너무 많이 나서, 중간부터 비염이 터졌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비염이 한번 터지면 아무것도 못한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시간에 추리고 뭐고 코를 푸느라 화장실을 왔다 갔다 했는데, 그래서 같이 간 사람들의 몰입이 좀 깨졌다. 차마 죄송하다고 말을 꺼내지도 못할 정도로 죄송했다. 그 와중에 난 범인을 맞춤! ... 죄송합니다...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했는데, 이 사람들이 꽤 흥미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앞으론 이 모임에서 만나면 한명씩 잡고 어떻게 살고 있냐고 물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확실히 자기 삶에서 치열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밤이면 술을 들고와서 모니터 앞에 앉는다. 끌리는 키보드를 하나 골라서 컴퓨터를 켜고나면 뭐라도 쓰고 싶어진다. 잔을 비워가면서 머리를 굴러도 쓸 말이 하나도 없어서 쓰기 시작한게 한주의 일기다. 사실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뭐라도 떠오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럴 리가 없다. 쓸 말이 없다는 게 얼마나 무능력한 삶인가. 그런 자괴에 한시간쯤 빠져있다보면, 지랄하지 말고 자자고 혼잣말을 한다. 지금이 그 한시간 전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요즘엔 만나는 사람들한테, ‘나 요즘 뭘 쓰고 있어’ 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일반적으로 평소에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닌데, 최근들어 꽤 자주 들었다. 진심으로 부러웠다. 쓸 게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럴수 있을까?

내일은 요리모임이 있다. 바지락 버터탕과 치즈 감자채 볶음을 만드는 법을 배우러 간다. 거기서 배워온걸 집에서 한번씩 복습해봐야 하는데, 맘만 먹고 3주째 미루고 있다. 이러면 다 까먹을 텐데, 냉동실에 닭가슴살도 가득 들어차 있고, 여러모로 궁지에 몰려있다. 다음주엔 재료를 사와서 해봐야겠다. 하지만 받아놓은 일부터 쳐내야지. 으쌰!

알고보니까 난 자기혐오만 빼면 이렇게 귀여운 사람이었다. 으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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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장 아이콘이 왜 요상한 네모 도형인지 모양인지 모르는 것처럼, 혹은 전화 아이콘이 왜 바구니같이 생긴 도형인지 모르는 것처럼 고시원의 이름이 왜 고시원인지 모르는 세대도 있을 거다.

    고시원의 원래 의미라면 ‘꿈담은’ 이란 수식은 식상할 정도로 어울리는 이름이겠지만, 실제 저 안을 채우고 있는 일용직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을 수식하기엔 너무 빈약한 이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다 곧 너무 건방진 생각이다 싶어서 황급히 접어 넣었다. 사실 세상의 모든 고시원을 뒤집어 탈탈 털어보자면 꿈밖에 나올 것이 없을 수도 있겠다. 이것도 건방진가?

    이번주에 예정된 귀여운 일정의 3/4이 지났다. 월요일엔 워드프레스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봐야겠다 싶어서(할 줄 모른다), 수십 개의 웹페이지를 번역하고 수십 개의 블로그 글을 읽어가면서 약 4시간 만에 계정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한 4시간쯤 더 들어서 게시판 하나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원랜 머릿속에 생각해 놨던 디자인이 있었는데 디자인은 언감생심 꿈도 못꾸고, 폰트조차도 바꾸지 못했다. 그 와중에 호스팅 서비스도 결제하고, 도메인도 샀는데, 이리저리 만지다가 뭘 잘못건드려 만들어 놓은게 싹 다 날라가고 관리자 권한도 잃었다. 그토록 중요한 일이었다면 경고 하나쯤은 보내줘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대처 방법을 찾아보다 모든걸 초기화, 처음부터 다시 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있는 계정, 이미 있는 도메인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또 2시간 정도 알아보다 환불을 진행, 모든걸 백지화시키는데 성공했다. 꽤 귀한 실패를 한 하루였다. 홈페이지는 굳이 만들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화요일엔 뭘했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난다. 수요일엔 민주가 일하고 있는 골프장 청소 알바가 예정되어있었고, 가서 열심히 청소를 했다. ㄱ형 건이형이랑 같이 했는데, 형들이 모두 열심히 한 것은 물론이고, 민주가 책임감을 갖고 가장 열심히 일하는 걸 보고 새삼 다시 봤다. 영 또라이인줄만 알았는데...

    목요일엔 기혁형이 사회를 보는 랩 경연대회가 있는 날이라 구경을 다녀왔고, 오랜만에 JJK를 만나서 근황에 대한 수다를 떨었다. 얼마나 오랜만이냐면 한 12년 만인거 같다.

    금요일인 오늘은 추리소설 모임에서 크라임씬 방탈출 모임이 있었다. 다들 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마련된 자리였고, 열정을 갖고 재미있게 즐겼다. 근데 나는 세트에서 먼지가 너무 많이 나서, 중간부터 비염이 터졌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비염이 한번 터지면 아무것도 못한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시간에 추리고 뭐고 코를 푸느라 화장실을 왔다 갔다 했는데, 그래서 같이 간 사람들의 몰입이 좀 깨졌다. 차마 죄송하다고 말을 꺼내지도 못할 정도로 죄송했다. 그 와중에 난 범인을 맞춤! ... 죄송합니다...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했는데, 이 사람들이 꽤 흥미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앞으론 이 모임에서 만나면 한명씩 잡고 어떻게 살고 있냐고 물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확실히 자기 삶에서 치열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밤이면 술을 들고와서 모니터 앞에 앉는다. 끌리는 키보드를 하나 골라서 컴퓨터를 켜고나면 뭐라도 쓰고 싶어진다. 잔을 비워가면서 머리를 굴러도 쓸 말이 하나도 없어서 쓰기 시작한게 한주의 일기다. 사실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뭐라도 떠오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럴 리가 없다. 쓸 말이 없다는 게 얼마나 무능력한 삶인가. 그런 자괴에 한시간쯤 빠져있다보면, 지랄하지 말고 자자고 혼잣말을 한다. 지금이 그 한시간 전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요즘엔 만나는 사람들한테, ‘나 요즘 뭘 쓰고 있어’ 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일반적으로 평소에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닌데, 최근들어 꽤 자주 들었다. 진심으로 부러웠다. 쓸 게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럴수 있을까?

    내일은 요리모임이 있다. 바지락 버터탕과 치즈 감자채 볶음을 만드는 법을 배우러 간다. 거기서 배워온걸 집에서 한번씩 복습해봐야 하는데, 맘만 먹고 3주째 미루고 있다. 이러면 다 까먹을 텐데, 냉동실에 닭가슴살도 가득 들어차 있고, 여러모로 궁지에 몰려있다. 다음주엔 재료를 사와서 해봐야겠다. 하지만 받아놓은 일부터 쳐내야지. 으쌰!

    알고보니까 난 자기혐오만 빼면 이렇게 귀여운 사람이었다. 으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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