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라고 쓰곤 있지만 사실 남들에게 보여줄 얘기만 쓸 뿐, 진짜 나를 흔들었던 중요한 일들은 쓰지 않는다. 그런 일들은 주로 아무도 모르게 마음속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이니까.
지난 몇 달에도 그런 몇가지 중요한 일들이 있었고, 이번주에도, 심지어는 오늘도 마찬가지다.
천진난만한 꼬마 아이에게 잡힌 잠자리처럼, 날개 하나씩 다리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있는걸 스스로 무력하게 관조하고 있는 것 같다.
자세히 쓰진 않겠지만 중요한 일이 몇가지 일어났다. 나는 판단하기를 포기했고, 그냥 파도 위에 가만히 떠있기로 했다. 의도한대로 되는 일들은 드물고, 우연이 무언가를 가져다 준다면 그 우연에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했다. 다만 그러려면 우연이 발생하는 단초를 많이 만들어야겠지...
실직 직후에 가졌던 의욕과 다짐들이 사라지고, 무기력의 시간이 찾아왔다. 굉장히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사실 하고 싶은건 하나도 하지 못했고, 연속성을 갖고 진행되고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20대에 이런 시간을 보낸 적이 꽤 있기에, 이 무기력이 불안한 기시감으로 덮쳐왔다. 나를 정신없게 만들어야 하는데, 한번 자신을 가만히 들어다 보라는 의사의 말 때문일수도 있겠다. 다시금 느끼지만 난 남의 말을 참 잘 듣는다.
지난 토요일엔 이태원에 놀러갔다가 생애 처음으로 입뺀을 당했다. 마흔살이니 무리도 아니지 뭐, 그냥 그것도 재미있어서 옆에 있는 바로 맥주를 마시러갔다.
사실 클럽에 가면 신나게 노는 척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무력함을 숨기기 위해서다. 그래서 사실 클럽에 가면 기분이 별로 좋진 않다. 뭐 노래가 좋으면 춤은 신나게 추지만,
일요일엔 용케 교회를 다녀왔다. 그리고 나서 뭘했나 기억이 안나 인스타 보관된 스토리를 찾아보니까 아마 집에서 만취했나보다. 일이 일었나 본데, 그래서 일을 못하고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했나보다. 월요일엔 운동을 했고, 화요일엔 오래된 친구를 만나서 술을 많이 마셨다. 친구는 몰랐겠지만, 친구 덕분에 꽤 평온한 시간을 얻었다. 목요일엔 집에서 김전일을 보면서 보냈고, 금요일엔 마포로 병원을 다녀왔다. 그리고 집에 왔다가 늦은 밤에 성남으로 가서 운동을 했다. 토요일엔 모임, 그리고 오늘은 교회와 운동, 대충 이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지금은 월요일에 산 위스키의 막잔을 비웠다. 이제 좀 싼 걸 사야겠다. 예전엔 한 병 사면 한 달은 갔는데, 지금은 어림없네..
많은 일이 일어나기도, 반대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기도 했다. 아 목요일에 문득, ‘아 나 좆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당연한 건데, 굉장히 늦게 깨달았다. 마흔살이 되어서 깨달은 것중에 하나가. 내가 남들보다 걸음이 느리다는 거였다.
오늘은 시간의 레칫이 하나 돌아갔다. 쓸데없는 수사인데, 대충 되돌릴 수 없는 일을 목도했다는 뜻이다. 다음 페이지를 모르니 미리 절망할 필요도 없겠지만 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날 아니 절망스럽기도 하다. 나는 남들보다 걸음이 느려, 깨닫는 것도, 느끼는 것도, 회복하는 것도 느리다.
장마가 있어 고마웠던 7월이 거의 끝나간다. 이번 달이 가기 전에 건강검진도 받아야 하고, 다음 달이 되면 실업급여 신청도 해야 한다. 난 생각이 딱 질색은 아니지만, 이번 년도에는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타투하고 싶다.
사진은 2010년 즈음에 전시에 가서 찍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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