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편을 쓰고는 거의 바로 잠도 자지 못하고 새벽에 캠핑을 갔다. 1시간 반 쯤 잔 거 같다. 아버지가 봐놓은 자리는 양구에 있는 한 노지였는데, 예전에 군대 장교 사택으로 쓰이던 곳 마당 정도 였던 것 같다. 옆에는 군인 아파트가 있었고, 우린 사람이 없는 집 옆에 텐트를 쳤다. 앞에 강은 참 좋아서, 들어가서 그래도 수영을 좀 했다. 수영장을 다시 끊어야겠다.
근데 모기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많고 독했다. 물속에 들어가 있을 때 빼고는 모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 수준이었고, 산모기가 또 독하긴 엄청 독해서 물린 자리는 살갗이 벗겨지도록 긁어도 가려움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나중엔 담뱃불로 찜질까지 했는데, 이 동네 모기는 침의 기화점도 높은지, 소용이 없었다.
내일 철수 일정을 물어보니 아버지는 점심에 고기까지 구워 먹고 슬슬 철수하면 된다고 답변, 나는 아침부터 해야지 안그러면 너무 덥고 그러다 해라도 떨어지면 철수도 못한다고 반박, 아버지는 그냥 다 된다고 우김, 결국 ‘그러세요 그럼’ 이라고 이야기를 결론지었다.
9시 쯤에 아버지와 삼촌이 좀 취했다 싶어서 언능 먼저 자겠다고 차로 들어왔다. 가족이랑 한 공간에서 자는 걸 못해서 혼자 차에서 자겠다고 차박 할 준비를 다 해 놓았는데, 당연히 전혀 잠을 자지 못했다. 차 안까지 모기가 들어왔고, 아까 물린덴 너무 가렵고,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한참 켜놔도, 끄면 3초만에 더워졌다.
결국 여섯시 쯤 잠을 포기하고 나왔다. 강에 가서 벌겋게 부은 다리를 (다리에 집중적으로 물렸다) 차가운 물속에 넣고 진정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7시 쯤 슬 오더니 ‘모기 때문에 너무 힘든데 갈까?’ 라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진짜로 힘든 표정이셨다.
또 한번 모기와 싸우며 철수, 대충 때려 넣자는 아빠에게 이번엔 내가, 절대 안된다, 하나하나 완벽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강하게 반박하여 긴 철수를 마치고 차에 시동을 걸자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한여름 노지 캠핑은 하는게 아니다. 다음 캠핑은 9월에 혼자 가리라.. 그런데 효도는 도대체 어떻게 하는거지?
20대에는 사람을 냉소했지만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30대에는 사람을 연민했지만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면 늘 예의바르게 뒤로 물러나기만 했다. 그리고 40대가 되자, 일로 만난 인연들은 있지만, 친구가 새로 생길거라는 기대는 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사이 친구 몇 명의 전화번호를 지우는 일은 있었다.
그런데 올해엔 의외의 일들이 몇가지 일어났다. 새로운 친구들도 생기고 오랜 친구와 다시 연락이 되어 새로운 관계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서로 모르던 친구와 친구가 인연이 되어서 또 아주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고 거기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주에도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산꼭대기에서 실수로 굴린 바위가 우당탕탕 굴러가는 느낌으로 관계가 이어지는 걸 나는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멍하니 보고 있었고, ‘이렇게도 사건이 생기고 친구가 생기는구나’ 싶어 놀라웠다.
지난 주엔 교회에서 ‘믿음이 있는데 변화를 왜 두려워하나’ 라는 주제의 설교를 들었다. 그 설교를 들으면서 내가 변화를 두려워 하고 있었나 가만히 고민해봤는데 통장과 빚을 고민했을 뿐 변화를 두려워하진 않았던 거 같다. 다만 벅찬 삶에 뭘 끼워 넣는 걸 부담스러워 했는데, 어찌어찌 벅찬 삶을 싹 비워주셨으니, 이제 끼우는 게 부담스럽진 않다.
그리고 이번주에는 ‘부득불 내가 자랑할 것은 나의 약함 뿐이다’ 라는 주제의 설교를 들었다. 바울의 말이었다. ‘나의 약함을 자랑한다.’ 라는 말을 곰곰히 생각했다. 물론 설교의 주제는 ‘약할 때 강함되시는 주’ 였지만 나는 그 약함이 아주 매력적일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타인이 내게 결핍을 내보이는 순간은 늘 두근거린다. 게다가 내가 결핍을 내보이기로 결심한 순간도 그렇지, 그러고 보니 ‘약함’은 정말로 자랑할만한 매력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이상한 낙관이 습관이 됐다. 예전엔 낙관이 마무리인 줄 알았는데, 요즘엔 낙관으로 고민을 마무리 짓고 나면 자연스럽게 그 뒤에 스토리와 기대가 따라붙는다. AI건, 인간이건 예상은 경험을 근거로 하기 마련일텐데, 자꾸 미래를 낙관하고 기대하는 거 보면 사실 나는 내 생각보다 더 재밌는 삶을 살아온 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