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현장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놓인다.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면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다행이다.
언젠가부터 1년 열두달을 똑같은 공기로 살고 있다. 이번 연말연시를 맞으면서 특히 그런 생각이 짙게 들었다. 명절도, 이벤트도, 축제도 전부 삶과 상관없다는 듯이,
고3에서 스무살로 넘어가는 2년, 엄빠는 이제 막 이혼을 하셨고, 나와 동생은 아버지와 월세 7만원짜리 지하방에 살던 때였다. 특히 고3이었던 2002년은 집세, 공과금, 부채를 모두 내지 못해 가스가 끊겨, 한겨울에 찬물로 머리를 감고, 친구집이나, 교회에서 샤워를 하던 때였다. 빨래는 세탁기가 있는 할머니 집으로 올라가야했기 때문에,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때 몸에서 냄새도 꽤 났을거다. 왜냐면 내가 그 지하방에서 늘 줄담배를 피웠거든.
학교에선 대학진학에 대해 상담을 하고 왔지만 등록금은 커녕, 오늘 아버지가 일을 쉬면 라면을 먹어야 했던 때였다. 믿기 어렵겠지만 2002년에도 그렇게 사는 집이 있었다.
뭐 대충 그렇게 살고 있을 때, 집에 친구가 놀러왔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밥 먹었냐고 물어보시더니 짜파게티를 끓여먹자고 하셨고, 과연 짜파게티를 끓여오셨다. 그런데 그 짜파게티 안에 두부가 들어있었다. 친구는 먹으면서, 아버지에게 ‘아니 어떻게 짜파게티에 두부를 넣을 생각을 하셨냐, 너무 충격적으로 맛있다’면서 감탄을 이어갔고, 아버지는 ‘원래 짜파게티에 담백한 게 들어가면 맛있어 허허허’, 하면서 부끄러워 하셨다.
그때 나는 ‘당장 대학 갈 돈도 없는데, 그깟 두부가 지금 뭐 별일인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생이 영유가 안되는 상황인데, 그깟 짜파게티에 두부 따위가 이렇게 감탄할 일인가 하는 생각에 꼬여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래도 친구가 왔다고 짜파게티에 뭐라도 더 넣은 아버지와, 일부러 과한 리액션을 해준 친구에게 감사하지만 그때는 혼자 기분이 언짢았다. (맛은 있었다.)
아버지는 더이상 우리를 부양할 능력이 안되어서 나와 동생은 그 다음 해에 어머니에게로 옮겨갔다. 사실 난 스무살이어서 부양이라는 말이 좀 머쓱하긴 하지만, 편의점 알바로 갑자기 살 집을 마련하진 못하니까 방법이 없었다.
당연히 어머니도 넉넉하게 사실 때는 아니라, 혼자서는 어찌저찌 지탱할 수 있었던 삶이 급격하게 기울었다. 다시 달동네 지하방으로 옮겨가고, 수입과 소비 주기가 점차 짧아져 대충 일주일 벌어 일주일 먹고사는 형편이 되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일을 마치고 취한 채로 쇼핑백을 잔뜩 메고 오셨다. 나와 동생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분명 가난한 집에선 쉽지 않았을 가격의 컨버스 오리털 패딩과 눌러 쓴 크리스마스 카드. 어머니는 옷이 우리 몸에 잘 맞는 것만 확인하고는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외치고 바로 침대로 들어가셨다. 그때는, ‘아이구- 없는 살림에 무슨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이거 20만원은 하겠네…’ 끌끌 혀를 찼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게 그때 그 짜파게티의 두부같은 거라고, 돈이 없어 힘겨운 어머니의 일상에서도 크리스마스는 찾아왔고, 어머니는 그 크리스마스에 두부를 넣으신 거라는 걸,
몇 년 전 크리스마스 시즌, 성남에서 사진의 광경을 보고 가슴이 찌르르했다. 성남에서 30년을 살았는데, 저 빨간 벽돌 집에 있는 쪽문 사정을 모르진 않는다. 노령연금 받으면서 폐지를 주으시는 어르신이거나, 혹은 청소나 일용직에 나가는 50대 쯤 되는 세입자일거다. (연령대가 높은 동네엔 으례 저렇게 어르신들이 쉬어가는 의자가 쌩뚱맞게 놓여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라고 저 얄궂은 색전구를 걸어놓은 마음이 반짝반짝 느껴졌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도 두부를 먹으면 좋겠다.
연말인지, 연초인지 실감도 못한 한 주다.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혹은 열정적으로 해넘이를 보냈을 거다. 와중에 한편으로는 우리의 일상도 또 그대로 소중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무안에서, 남태령에서, 연대의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는 연말연시다. 부디, 연대하는 이들도, 조용히 마음의 응원을 보내는 이들도, 각자의 일상을 해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삶은 세상으로 확장되고 우리는 방향의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래서 어느 자리에 있건 각자의 순간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자신을 지키는 이들에게서 내가 더 많은 힘을 받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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