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10년 전으로 돌린다면 유튜브의 권력이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10년 전으로 돌리면 종편채널이 사라지고, 거기서 다시 10년 전으로 돌리면 인터넷의 영향력이 희미해진다. 그리고 미디어는 5개의 티비 채널과 비슷한 수의 라디오, 그리고 5개의 신문이 남게 된다. 5개의 TV 채널에서 입장이랄게 없는 교육방송을 제외하면 4개, 같은 회사인 kbs1과 kbs2를 하나로 보면 3개의 채널이 남게 된다. 그렇게 30년 전으로 돌아가면 온 국민이 3개의 채널만 보던 시절이 된다. (거기서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가면 독재에 순응하는 관영언론만 남게 된다.)
그 시절 방송은 뉴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권력을 갖고 있었다. 무명의 가수를 단숨에 스타로 만들 수 있었고, 스타를 단숨에 매장 시킬 수도, 동네 구멍가게를 기업으로 키울 수도, 반대로 기업을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시청자에 대한, 이 막대한 권력은 반대로 시청률로부터 나왔으며, 또한 시청률을 통한 권력은 광고주로 이전된다. 제4의 권력은 그렇게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형태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한데 이 구조에는 맹점이 있다. 시청자의 지지만 받으면 권력이 무한대로 커진다.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고 다수의 목소리만 대변하거나 시청자를 쇼 비즈니스만 추종하는 바보로 만들면 미디어는 스스로 그 권력을 무한대로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시청자는 쉽게 바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언론인’은 다수의 목소리를 추종하는 데서는 만족을 얻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의 직업에 그보다 더 중요한 사명이 있다고 믿었다. 제4의 권력을 유지하는 구조에는 반드시 ‘언론인의 사명’이 필요했다.
1950년대 대마왕을 물리치는 데 성공한 미국에는 또 다른 악의 제국이 나타났다. 소련과 공산주의였다. 몇 년 전까지 그들은 공동의 적을 갖고 있었지만, 그 공동의 적을 물리치자마자 서로를 적으로 규정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2차 대전은 다른 대륙의 전쟁이었지만, 냉전은 달랐다. 이번엔 원자폭탄이라는 무기가 세상에 존재하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내 보였고, 또 사용함으로써 그 위력을 증명해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증명한 공포로부터 미국은 안전한 대륙이 아니었다. 중국이 공산화가 되고 한국 전쟁이 터졌고, 미국에선 실제로 몇몇 간첩이 색출되었다. 공포가 허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조지프 매카시는 이 공포를 더 크게 부풀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부풀려진 공포를 다른 사람들은 매카시즘이라고 불렀다.
1950년 2월 9일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205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갖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는 종종 문건을 흔들어 보였고, 늘 들고 다니는 서류 가방에 그 명단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를 밝히면 문건의 출처가 밝혀지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매카시가 누군가를 공산주의자로 지목할 때마다 미국에서 청문회가 열렸고, 청문회는 TV로 생중계되었으며 뉴스에 대서특필되었다. 그렇게 찰리채플린이 미국에서 추방되었고, 학자들이 미국을 떠났으며,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이 직장이 잃었다. 이 광풍은 3년 동안 지속되었다.
언론인은 진실이 대중들에게 설득되는 타이밍을 읽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4년에 이미 세계일보에서 정윤회 문건을 보도함으로써 비선 실세가 국정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으나, 정작 정권을 무너뜨린 건 2016년에 태블릿 보도였다. 그 사이에 국정교과서 도입과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가 있었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는 불신이 축적될 시간이 필요했다.
매카시즘 광풍 속에서 그 타이밍을 가장 빨리 잡은 언론인이 에드워드 R. 머로였다. 1953년, 한 공군 장교가 퇴역당했다. 그 장교의 아버지가 공산주의자로 의심된다는 이유였다. 당시 CBS에서 See It Now라는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에드워드 머로는 이 사실을 논리적으로 파고 들으며 ‘매카시즘’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 방송의 마지막 멘트는 다음과 같았다.
“이제 매카시 이야기의 최근 상황을 조금 더 조명해 보겠습니다...우리는 항상 '비난'이 곧 증명은 아니며, '유죄 판결'은 증거와 법적 절차에 기반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두려움 속에 살지 않을 것입니다...그리고 카시우스는 옳았습니다. “브루투스여 우리의 잘못은 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습니다. 안녕히 주무시고, 행운이 있기를 바랍니다. (1954년 3월 9일 방송)
매카시는 이에 즉각 반박방송을 요청했으며 CBS는 그가 보내온 영상을 그대로 내보냈다.
안녕하십니까... 머로는 상징이고, 지도자이며... 누가 따르지 않는 자에게 달려드는 자들의 무리 중 가장 교활한 존재입니다...머로 씨는 모스크바의 공산주의 학교를 후원했습니다... 추후 그 결성원 상당수가 공산주의자로 밝혀졌습니다. 지금 보신 것은 주지사 조지프 R. 매카시의 영상입니다... 안녕히 주무시고, 행운이 있기를 바랍니다. (1954년 4월 6일 방송)
그리고 머로는 이렇게 응답했다.
매카시 의원은 저희가 제시한 사실들에 대해 아무런 오류를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저희는 그가 사실관계에서 오류를 찾지 못했음을 결론지어야 합니다. 다음 주에는 국가적으로 더욱 중요한 이슈들을 다루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주무시고, 행운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방송은 종종 텔레비전 역사상 최고의 순간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시민들은 매카시즘에 피로감을 드러냈으며, 매카시가 갖고 있다는 명단을 공개하기를 요구했다. 이후 메카시는 군부에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주장을 하다가 청문회에서 몰락한다. 그리고 1954년 12월 2일 상원에서 매카시에 대한 비난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매카시즘은 막을 내렸다. 머로의 방송이 있고 난 후 10개월 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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