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제목자백클럽2025-07-27 10:54
작성자 Level 10

초인종을 누르고 회원권을 보여주었다. 삑, 클럽의 문의 열렸다. 가면을 고르고 자리를 찾았다. 클럽의 이름은 자백클럽, 가면을 쓰고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곳이다. 처음 회원가입의 요건 역시 꽤 높은 금액의 가입비와 자백이다. 당연히 어쭙잖은 죄로는 안 된다. 듣는 사람이 흥미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죄의 질감과 깊이가 있어야 한다. 자백하는 죄는 대게 법의 허용을 한참 넘어선다. 폭행, 강간, 살해뿐만 아니라 국가적 범죄나, 상류층의 비리도 들을 수 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범행의 주인공을 만나거나, 국가 지도자의 섹스스캔들을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가끔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어쩐지 모두 신경 쓰지 않는다. 이곳에서 흘러 나간 이야기로 온 나라가 떠들썩해지는 날에도 클럽은 여전히 문을 연다. 메뉴판에는 술뿐만 아니라 몇 종류의 마약도 판매하고 있다.


자백의 내용을 듣고 흥미가 생기면 클럽 측에 요청해서 자백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 물론 만남의 조건을 상대가 동의해야 한다. 그래서 사실 절반은 섹스클럽이다. 범죄자에게 성욕을 느끼는 사람들이 모여서 상대의 자백 내용을 듣고 만남의 조건을 제안하고 상대가 이를 수락하여 만남이 이뤄지는 식이다. 만남은 클럽 안에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밖에서 성사되기도 하지만 안전은 클럽 안에서만 보장된다.


나처럼 자백 내용에만 흥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범죄를 저질렀는데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없는 이들이나,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자신의 비범함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나는 내가 저지른 몇 건의 살인과, 그를 다룬 기사까지 준비해 왔다. 그리고 경찰의 수사 어디에서 빗나갔는지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몇몇 거액의 조건으로 나를 만나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으나 모두 거절했다. 강간 이력은 자백하지 않았는데, 내 정체를 파악한 클럽의 직원인 R은 강간까지 자백한다면 조건의 금액이 두 배로 올라갈 거라고 실실 웃으며 말해주었다.


R이 안내해 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R은 모든 손님의 성향을 파악하고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자리를 안내한다. 하지만 자리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거부권은 없다. R이 권한 자리에 앉기 싫다면 클럽을 나가는 수밖에 없다.


어린 남성의 목소리가 자백을 시작하고 있었다. 20대 초반이려나? 이렇게까지 나이가 어린 손님은 드물기에 어두운 구석에서 벌써 사타구니를 만지고 있는 늙은이들도 있었다. 내용은 강간과 살인이었다. 집으로 들어가, 남자를 죽이고 여자를 강간했다고 말했다. 긴장했는지 이야기할 필요 없는 장소와 시간까지 불필요하게 자세했다. 늙은이들이 벌써 클럽 측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로선 별 감흥이 없는 이야기일 수 있었다. 단 한 가지만 빼고, 저건 저 애송이가 아니라 내가 벌인 일이다.


어린 남자가 말한 범행 장소는 이미 재개발로 사라진 주소지이다. 아마 저 애송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이미 사라졌을 거다. 내 첫 번째 살인이고, 첫 번째 강간이었다. 어떤 게임, 어떤 섹스에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내가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처음으로 발견한 밤이었다. 어설픈 범행임에도 경찰은 나를 찾아내지 못했고, 그 후로 나는 경찰의 실수를 유도하는 법을 파악했다. 17년 전의 일이다. 저 애송이는 겨우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저 새끼가 했을 리도, 봤을 리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왜 저 애새끼가 내 일을 지가 한 일처럼 떠벌이고 있을까? 


R에게 다가갔다.


“저 애 만날 수 있나?”


R은 나를 한참 쳐다보았다. 클럽에 가입하고 처음으로 하는 말이었기에 상황을 깊이 생각하는 듯했다.


“조건은?”


“기본 금액으로 하지, 저 늙은이들보다 높은 금액을 낼 수는 없으니 상대한다면 내가 제일 편할 거라고 전해줘”


마음만 먹으면 저 새끼를 찾아낼 수는 있지만 일단 가장 쉬운 방법으로 접근했다. 이어서 다른 몇 명의 자백이 끝나고 R이 다가왔다.


“자네를 택했어, 저런 앨 데려와 놓고는 푼 돈만 벌어서 사장이 기분이 좋지 않아”


수수료를 받는 클럽 입장에서는 그럴 테지 클럽에서는 보기 힘든 나이다. 늙은이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을 제시했을 거다.


“밖에서 만나자는군”


의외다. 아니 어리니까 오히려 자신이 있는 건가?

R이 쪽지를 건네주었다.

거기였다. 오래전에 헐리고 들어선 유명 건설사 아파트의 주소가 적혀있었다. 아무래도 본격적인 도발인 모양이다.


도구를 챙기고 집을 나섰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밤에 어떻게 된 건지는 알 수 있으리라, 공동현관서 호수를 누르고 가만히 카메라를 내려다보았다. 문이 열렸다. 현관문 앞에서 역시 버튼을 누르고 카메라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렌즈에서 긴장이 느껴졌다. 문이 열렸다. 어두웠다. 놈은 거실 끝 쪽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신발을 벗지 않고 들어섰다. 놈에게 다가가선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낚아챘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 채취는 R의 채취다. 상황을 짐작하기 힘들었다. 몸부림을 치고 있었는데, 희밋한 불빛 희끗이 가면이 보였다. 이 집 안에는 놈과 나, 그리고 R 외에도 한 명이 더 있었다.


“저 애가 클럽에 물어봤다더군, 자기가 첫 살인을 한다면 그 살인을 살 사람이 클럽에 있겠느냐고 말이야.”


가면을 쓴 사람이 말했다. 늙은 남자였다.


“클럽이 생긴 이래 최고가를 경신했다고 하면 조금 위안이 될까? 내가 사기로 했지, 저 애의 첫 살인을, 자네가 저 애의 아빠를 죽이고 엄마를 강간했다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애새끼가 나를 찔렀다. 연습을 많이 했는지 정확히 폐를 관통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덜덜 떨며 말했다.


“어제 엄마가 죽었어,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 당신이 아빠를 죽였다는 말을 들었어, 당신, 기억이나 하고 있어?”


가까이서 보니 내가 짐작한 나이보다 더 어렸다. 이제 중학생티를 막 벗은 애새끼였다. 폐를 찔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새끼한테 꼭 물어야 할 게 있는데, 그때 내가 죽인 건, 남편이 아닌 여자의 친오빠였다고, 여자는 결혼하지 않았다고, 너는 도대체 누구냐고, 물어야 했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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