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제목구멍2025-08-29 12:37
작성자 Level 10

첫 구멍은 고등학교 때였다. 현관과 대문 사이 한 평도 안 되는 마당을 덮고 있는 플라스틱 슬레이트였다. 어느 날 그 슬레이트에 구멍이 생겼고, 그 사이로 동전만큼의 햇살이 들어왔다. 학교에 가기 위해 현관문을 열자 햇살이 내게 사선으로 꽂혔다. ‘이래서 햇살이라고 하는 거구나,’ 문을 닫고, 현관에 박힌 빛의 인장을 한참 보다가 등교했다.

 

가난한 집의 대문이란 다른 집의 대문보다 더 강하다. 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지만,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가난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탓에, 가난한 집의 사람들은 녹슨 대문에 더 많은 단절을 희망한다. 그래서, 대문 밖과는 굳건하게 단절되어 있던 작은 마당이었는데, 그 마당에 작은 균열이 생긴 날이었다. 그래도 그날 아침의 느낌은 균열이라기보다는 뭐랄까, 잊힌 신전에 찾아온 작은 신탁 같았다. 불구의 햇살도 햇살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 어머니가 그 구멍을 한참 들여다보고 계셨다.

 

뭐 하세요?”

 

아니다,”

 

어머니는 고개를 돌리고 집으로 들어가셨다. 나 역시 고개를 들어 구멍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당에는 구멍이 하나 더 생겼다. 그리고 그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좋은 일이었다. 성실하게 월급을 받는 것은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손을 댔던 일들은 온통, 다단계, 창업, 동업, ‘잘만 하면 대박이 터지는 일만 붙들고 살았고, 그 모든 일들은 전부 소개해 준 사람들의 주머니만 채웠다. 평생 월급쟁이를 바보 취급하며 살았지만 삶을 지탱했던 건 결국 어머니의 월급이었다. 아버지가 희망을 가질수록 늘어나는 건 빚과 술병뿐이었다. 차라리 백수 새끼가 낫지.

 

경찰이 집을 몇 번 오갔지만, 알코올중독 환자가 죽은 게 무슨 사건이 될 리 없었다.

 

아버지를 원수같이 생각한 내게는 좋은 일이었지만, 어쨌든 의무감으로 아버지의 삶, 그리고 가족을 지탱하던 어머니께는 그래도 슬픈 일이었던가 보다, 하긴 내가 태어나기 전의 기억도 있을 테니, 그 기억으로 평생을 버텼겠지, 어머니는 실제로 많이 슬퍼하셨고, 크게 우셨다. 나로선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어머니가 더 크게 우신다고 저 인간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

 

어머니가 아버지 모르게 들어놓았던 보험에서 약간의 돈이 나온 모양이다. 마침 수능을 본 내가 그 돈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교에 등록한 날, 마당 천장에 구멍이 하나 더 생겼다. 그 이후로도 몇 개의 구멍이 더 생겼다. 처음 생긴 구멍에 의미 부여를 했던 나는 구멍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의미 부여를 했다. 실제로 구멍이 생긴 날 즈음엔 늘 무슨 일이 있었다. 게다가 주로 좋은 일이었다. 처음 여자 친구가 생겼을 즈음에도, 어머니의 월급이 올랐을 때도, 알바를 구했을 때도, 늘 시기에 맞춰서 구멍이 하나씩 생겼다. 사실 햇볕에 바짝 마른 낡은 플라스틱은 언제든지 부스러질 수 있었고, 삶에는 늘 무슨 일이든 생기기 마련이니 의미 부여야 하기 나름이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구멍에 기도하기 위해 시작했다. 구멍의 개수를 세어 놓았으며, 모든 구멍을 외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비 오는 날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가 우산을 수직으로 들고 슬레이트 지붕을 쳐다보고 계셨다. 내가 온 기척도 못 느끼시고는 그대로 우산을 올려서 지붕에 구멍을 하나 냈다.

 

뭐 하세요?”

 

아무것도 아니다.”

 

어머니는 덤덤하게 말씀하시고는 현관문을 여셨다. 그리고 그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는 계단이 많은 고옥에 살았는데, 그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던 모양이다. 경찰이 집을 몇 번 오고 갔지만, 노인네의 실족이 무슨 사건이 될 리 없었다.

 

역시 어머니에겐 슬픈 일이었지만, 외할아버지의 특별한 추억도 없었던 내게는 딱히 나쁠 것도 없는 아니 솔직히 좋은 일이었다. 일찍부터 외국으로 이민한 큰외삼촌은 유산의 대부분을 어머니에게 주었다. 사실 유산이란 것도 없는 금액이었지만, 큰외삼촌네 살림에는 별거 아닌 금액이 우리 집엔 큰 금액이었다. 외삼촌은 동생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 평생 외면한 미안함을 그 금액으로 메우려 하는 듯했다.

 

어머니는 이날도 크게 우셨다. 하지만 그런다고 할아버지가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 나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이후 몇 개의 구멍이 더 뚫렸지만, 어쩐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졸업을 했고, 회사라기엔 얄궂은 직장에 취직했고, 지붕의 구멍 개수를 세기엔 너무 바쁜 삶을 살았다. 어머니는 궂은일을 그만두셨고, 동네에는 재개발 동의서에 서명하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렸다.

 

또 비가 오는 날이었다. 현관 앞에 쪼그리고 신발 끈을 묶는데, 머리 위로 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문득 옆에 있는 우산을 집어 툭, 지붕을 쳐서 구멍을 냈다. 순간 뒤에서 !’ 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어머니가 입을 막고 놀란 채로 얼어 계셨다.

 

이거 슬슬 뭐라도 갖다가 막아야겠어요.”

 

얼버무리고 문을 닫았다. 이미 잔뜩 뚫려있는 구멍인데 뭘 그리 놀라실까. 놀란 어머니를 뒤로하고 집을 나서며 단단한 대문을 굳게 닫았다. 그리고 그날 집에 돌아와 대문을 열자 휑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슬레이트 지붕이 없었다.

 

지붕 어디 갔어요?”

 

있으나 없으나 똑같은 거 그냥 부숴버렸다. 어차피 집도 곧 헐릴 텐데 그거 막아서 뭐 하냐?”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때 현관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경찰입니다.”

 

이후의 일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회사를 몇 번 쉬다가 그만두었다. 경찰의 설명으로는 어머니가 아버지와 외할아버지를 죽였다고 한다. 미국에 있는 외삼촌은 여전히 오지 않았으며, 나는 법률 구조공단을 찾아가거나 변호사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리고 지붕이 없는 휑한 마당으로 들어왔다. 현관 옆에 누워있는 우산을 들어 밤하늘을 쿡 찔러 봤다. 당연히 걸리는 것 없이 우산은 밤하늘로 솟았다. 재개발되면 오래 산 세입자들은 임대아파트의 입주권을 준다고 한다. 밤하늘 아래 민망하게 서 있는 대문은 참 오랫동안 굳건하게 우리의 가난을 지켜왔지만 지금은 뚫린 하늘 아래에서 의미없이 삐걱거릴 뿐이다. 나도 어머니도, 우리를 평생 가두었던, 슬레이트 지붕에서 벗어났다.



화면 캡처 2025-08-29 213600.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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