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제목201504232025-07-12 10:57
작성자 Level 10

성남, 금광동 어머니와 동생과 살던 집,

누군가의 발소리, 혹은 목소리가 들릴때 창문을 계속 보고있으면 곧 그 사람의 신발이 지나갔다. 이곳은 언덕의 꼭대기였고 인적이 많지 않은 주택가였다. 내 모니터는 창문 바로 아래에 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는 사람은 집에서 나와 언덕을 올라온 사람이었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나는 사람은 내리막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발걸음엔 힘이 없었다.

한번은 밤새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이른 아침에 (집에서 나와 언덕을 올라온) 어떤 여자가 창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오줌을 눈 적이 있었다. 순간, 너무 놀라 멍-하니 그 힘찬 오줌 줄기를 보고있었다. 왜일까, 결코 짧지 않았던 그 시간동안 나는 숨을 참고 동작을 멈추고 있었다.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면 안될 것 같았다.

오줌줄기가 수그러 들고, 엉덩이가 부웅 떠올랐다. 그리곤 다시 보통사람들처럼 신발만 보인 채로 사라졌다. 하긴, 반쯤은 땅에 묻혀있는 창이다. 그나마도 녹슨 철창과 낡은 나무 창문이다. 게다가 아침이었다. 어둑한 반지하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형광등은 밖에서 보이지 않았을 거다. 시커먼 저 창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물 한바가지를 가지고나가 그 여자의 자국에 왈칵 부었다. 언덕 위에 오줌줄기는 벌써 저 아래까지 흘러가고 있었다. 맞은편 계단참에 앉아서 조금 전의 나와 시선을 마주쳐 보았다.

과연, 창문이라기 보다는 지층의 단면에서 발견된 유적 같았다. 담배를 피워물며 생각했다. '내가 봐왔던 수많은 신발들 중에 저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아는 신발은 몇이나 될까. 버려진 신전 안에 천년째 살고 있는 잊혀진 신처럼, 우리 가족도 그렇게 살고 있는 걸까? 우리 가족이 여기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과연 실제로 나도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점차 잊어갔다. 방안의 나는 저 창밖에 세상이 있다는 걸 신뢰하지 못했고, 집 밖의 나는 저 창안에 나와 가족이 살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내가 나를 지우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어느 날 아침, 밤새 창문을 가린 채로 주차되어 있던 1층 아저씨의 차가 출근을 한 뒤 발견했다.
그 때 물을 뿌려서 였나, 혹은 여자의 오줌 덕분이었나?

콘크리트 틈사이로 나와 곳곳하게 선 잡초가 있었다.
분명 누군가가, 혹은 세상전체가, 그 창문 안에 너희 가족이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보낸 신호였다. 내가 믿고 있는 신이,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땅이, 네가 거기 있는 걸 알고 있다고 보내온 신호였다.
오래도록 저 곳곳함이 고마웠고, 생경함이 반가웠다.

공기보다 가벼운 삶이 그래서 좋았다.

어쩌면 나도, 우리 부모님께 그런 의미 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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