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제목202505282025-07-06 03:10
작성자 Level 10

몇 개월 째 팔리지 않고 있는 리얼포스를 괜히 두드리고 싶어서 앉았다.
이건 내가 가진 키보드중 유일하게 유선이라, 데스크테리어에도 아주 치명상을 입히고 있으면서도 타건감도 내 스타일이 아니다. 한타 한타 초콜릿을 부러뜨리는 타건감이라고 하던데, 과연 그런 느낌이 나기는 난다. 근데 한타 한타 칠 때마다 초콜릿을 부러뜨리고 싶지는 않다.

최선을 다했어도 퇴근 후엔 허망함을 느낌다. 멍하니 있는 동안 달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갔다. 티비를 켜자마자 뮤트 버튼을 누른다. 사람이 있다는 증거는 얻고 싶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받아들이기엔 지쳤다. 구겨진 종이처럼 한번 이지러진 애정은 다시 펴지지 못한다. 이미 엉망진창인 테트리스 위에 또하나 비정형의 감정을 쌓는다.

차로 다닌 출근길은 몇개월이 지나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한번 걸은 길은 기가 막히게 기억해낸다. 자박, 한걸음에 나는 무슨 의미를 담길래 단 한번의 기억도 잊지 못하고 기어코 꺼내어내는지 스스로도 신기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겐 나를 파괴할 권리가 없다. 기대와 애정, 차곡이 쌓여있는 반찬통, 지나간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예쁜 기억이라는 저주, 반가움, 익숙함, 편안함, 아는 얼굴들로 이루어진 내게 내가 행사 할수 있는 권한은 사실 별로 많지 않다.

이효석처럼 달빛에 젖고 싶어도 인공의 빛을 떠날 수 없다. 생계가 달린 주인장의 진심보다는 필요한 성의만 표하는 아르바이트의 인사가 더 아늑하다. 내 입맛을 기억하는 반찬보다는 레디메이드의 레시피에서 더 큰 위안을 얻는데, 내일은 또 만들어 놓았다는 반찬을 가지러 가야한다. 그 사랑이 멈추려면 그 사람이 생이 끝나야 한다는 사실이 내겐 꽤 아득하다.

세상엔 무능력과 진심이 가득하다. 널부러진 진심을 밟고 걸으며 나또한 자꾸 사과만 해댄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내일 다시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당신이 무정형을 빚는다면 나는 그걸 묘사해내야만 하는 사람이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휘발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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