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윤세민

제목202408272025-07-02 02:53
작성자 Level 10

믿을 수 없이 많은 걸 한 한 주였다. 일단, 지난주 주기를 쓰고 한 4시간 후인 화요일에 건강검진을 받고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받았다. 그리고 집에 와선 일을 했고, 수요일엔은 또 성남이 일이 있어서 아침부터 오후까지 가 있었다. 그러는 중에 조금만 방심하면 감기가 계속 뻗쳐와서, 틈틈히 아팠고, 틈틈히 약을 챙겨 먹었다. 그 와중에 마음에 드는 가방과 티셔츠를 샀다. 과소비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놓칠 수는 없는 템이었다.

목요일엔 서울로 나가서 고기를 먹었고, 금요일엔 동묘에서 옷을 잔뜩 샀다. 과소비였지만 지금 봐도 예쁜 옷이다. 그대로 새로 산 옷(헌 옷이지만)을 입고 저녁엔 안국으로 추리소설 모임을 다녀왔다. 추리소설 모임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확장이 많이 되어 다음 모임에는 하루키의 소설까지 끼어들었다. 이번 모임에서는 무려 박민규의 이름까지 나왔는데, 놀라운 건 그 이름을 꺼낸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거다.

토요일엔 탯버네 모여 애들과 밤 늦게까지 술을 먹고 노래방까지 갔다가 탯버네서 잤는데, 이놈들이 에어컨을 틀어놓고 자는 바람에 나는 감기가 또 뻗쳤다.

일요일 아침에 일찍 으슬으슬한 몸을 끌고 집에 와서 눈을 붙이고 일어나서 서울로 나갔다. 그러고 보니 스무스하게 2주 연속 교회를 안갔구나.. 지금 깨달았네… 월요일인 오늘은 큰 짐을 옮길 일이 있어서 전두환네 동네에서 90kg 짜리 짐을 성남에 갖다 놓았다.

은근히 읽은 게 많은 한 주이기도 하다. 채만식에 대한 재미있는 논문을 읽었고, 전후 방공호에 대한 재미있는 자료도 잀었다. 다 읽고는 간만에 읽은 논문에 왠지 신이나 옆에 있던 저자에게 조잘조잘 떠들기도 했다.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김기택의 ‘소’도 친구가 사줘서 간만에 몇 편의 시를 읽었다. 처음 김기택의 시를 읽었을 때는 너무 좋아서 서강대교 위에서 악을 쓰다가 빠져 죽고 싶었다. 다행히 지금은 너무 좋아서 아껴읽는 정도로 소화가 가능하다.

다음 달 모임 주제인 하루키의 단편소설 ‘기노’도 순식간에 읽었는데, 꽤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새삼 하루키 글은 진짜 쉽게 잘 읽히는구나 싶어서 감탄했다. 슬퍼해야 할 때를 놓친 남자의 이야기였는데,. 잠깐 나한테 빗대어 생각해봤다. 아니 근데, 맘껏 상황에 맞춰 슬퍼한다고 해도 그 슬픔은 또 누가 다 감당할 건가, 소설로 쓰는 거야 쉽지, 소설 속 기노도 나도 터지는 감정을 마음놓고 내 보일 나이도 아닌데, 감정이 터진다고 그건 또 어떻게 여밀건가

생각해보면,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용케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쏟아내고 위탁하고 있었다. 지난 연인이 10년 동안 그걸 감당해주고 있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 그렇게 살다가, 마흔 먹어 갑자기 혼자가 되다 보니, 29살에서 40살로 한번에 나이를 먹은 기분이다. 그래서 요즘엔 종종 ‘다들 이 나이를 어떻게 살아온거지?’ 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여러분 도대체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시작할 때 겁을 많이 집어 먹는 편이다. 일도, 취미도, 사람도,

첫 출근을 하는 날에는 늘 체했고, 중고로 꼴랑 20만 원짜리 카메라를 사면서도, 내가 잘못한 게 아닐까 하면서 불안해 했다. 새로운 시작을 불안해하고 잔뜩 경계하면서도 골치아픈 건 또 다른 마음은 이미 저만치 혼자 앞질러간다는 거다. 결국 불안도 앞서나간 감정의 뒷덜미를 잡아채지 못하고, 꽁무니를 밟으면서 하나하나 쓸모없는 복기를 하는 성격이다. 거 복기 해봤자, 되돌아 갈 것도 아니면서,

새로 시작하는 게 많은 2024년이다. 술에 물 탄 듯 한 자세로 경계선에 서있어 보려 해도, 어떤 감정은 또 저만치 달려나갔고, 또 어떤 상황은 나한테 선택을 강요한다. (마지막까지 미뤄뒀으니까 당연하다.) 실패의 좌절보다 시작의 설렘이 더 큰 것도 알고, 잃었을 때의 아픔보다 가졌던 기간의 기쁨이 더 컸다는 것도 아는데, 뭐가 무서워서 또 문지방에 앉아있는지 모르겠다. 막상 시작하면 잘한다는 거 내가 아는데,

내일도 시작, 모레도 시작, 다음 주도, 다음 달도 시작이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사무적으로 시작이 계속된다. 시작을 앞두고 우울해 하는 것도 습관인데, 습관이라도 치부하고 넘겨버리면 또 앞질러 나간 감정이 알아서 날 이끌어 줄까? 맘 편히 파도에 몸을 맡겨 놓으면 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원더랜드에서 속없이 신나하고 있을까?

참 오늘 충동적으로 아침 수영을 등록했는데, 과연 결과가 어찌 될지 참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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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을 수 없이 많은 걸 한 한 주였다. 일단, 지난주 주기를 쓰고 한 4시간 후인 화요일에 건강검진을 받고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받았다. 그리고 집에 와선 일을 했고, 수요일엔은 또 성남이 일이 있어서 아침부터 오후까지 가 있었다. 그러는 중에 조금만 방심하면 감기가 계속 뻗쳐와서, 틈틈히 아팠고, 틈틈히 약을 챙겨 먹었다. 그 와중에 마음에 드는 가방과 티셔츠를 샀다. 과소비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놓칠 수는 없는 템이었다.

    목요일엔 서울로 나가서 고기를 먹었고, 금요일엔 동묘에서 옷을 잔뜩 샀다. 과소비였지만 지금 봐도 예쁜 옷이다. 그대로 새로 산 옷(헌 옷이지만)을 입고 저녁엔 안국으로 추리소설 모임을 다녀왔다. 추리소설 모임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확장이 많이 되어 다음 모임에는 하루키의 소설까지 끼어들었다. 이번 모임에서는 무려 박민규의 이름까지 나왔는데, 놀라운 건 그 이름을 꺼낸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거다.

    토요일엔 탯버네 모여 애들과 밤 늦게까지 술을 먹고 노래방까지 갔다가 탯버네서 잤는데, 이놈들이 에어컨을 틀어놓고 자는 바람에 나는 감기가 또 뻗쳤다.

    일요일 아침에 일찍 으슬으슬한 몸을 끌고 집에 와서 눈을 붙이고 일어나서 서울로 나갔다. 그러고 보니 스무스하게 2주 연속 교회를 안갔구나.. 지금 깨달았네… 월요일인 오늘은 큰 짐을 옮길 일이 있어서 전두환네 동네에서 90kg 짜리 짐을 성남에 갖다 놓았다.

    은근히 읽은 게 많은 한 주이기도 하다. 채만식에 대한 재미있는 논문을 읽었고, 전후 방공호에 대한 재미있는 자료도 잀었다. 다 읽고는 간만에 읽은 논문에 왠지 신이나 옆에 있던 저자에게 조잘조잘 떠들기도 했다.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김기택의 ‘소’도 친구가 사줘서 간만에 몇 편의 시를 읽었다. 처음 김기택의 시를 읽었을 때는 너무 좋아서 서강대교 위에서 악을 쓰다가 빠져 죽고 싶었다. 다행히 지금은 너무 좋아서 아껴읽는 정도로 소화가 가능하다.

    다음 달 모임 주제인 하루키의 단편소설 ‘기노’도 순식간에 읽었는데, 꽤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새삼 하루키 글은 진짜 쉽게 잘 읽히는구나 싶어서 감탄했다. 슬퍼해야 할 때를 놓친 남자의 이야기였는데,. 잠깐 나한테 빗대어 생각해봤다. 아니 근데, 맘껏 상황에 맞춰 슬퍼한다고 해도 그 슬픔은 또 누가 다 감당할 건가, 소설로 쓰는 거야 쉽지, 소설 속 기노도 나도 터지는 감정을 마음놓고 내 보일 나이도 아닌데, 감정이 터진다고 그건 또 어떻게 여밀건가

    생각해보면,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용케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쏟아내고 위탁하고 있었다. 지난 연인이 10년 동안 그걸 감당해주고 있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 그렇게 살다가, 마흔 먹어 갑자기 혼자가 되다 보니, 29살에서 40살로 한번에 나이를 먹은 기분이다. 그래서 요즘엔 종종 ‘다들 이 나이를 어떻게 살아온거지?’ 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여러분 도대체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시작할 때 겁을 많이 집어 먹는 편이다. 일도, 취미도, 사람도,

    첫 출근을 하는 날에는 늘 체했고, 중고로 꼴랑 20만 원짜리 카메라를 사면서도, 내가 잘못한 게 아닐까 하면서 불안해 했다. 새로운 시작을 불안해하고 잔뜩 경계하면서도 골치아픈 건 또 다른 마음은 이미 저만치 혼자 앞질러간다는 거다. 결국 불안도 앞서나간 감정의 뒷덜미를 잡아채지 못하고, 꽁무니를 밟으면서 하나하나 쓸모없는 복기를 하는 성격이다. 거 복기 해봤자, 되돌아 갈 것도 아니면서,

    새로 시작하는 게 많은 2024년이다. 술에 물 탄 듯 한 자세로 경계선에 서있어 보려 해도, 어떤 감정은 또 저만치 달려나갔고, 또 어떤 상황은 나한테 선택을 강요한다. (마지막까지 미뤄뒀으니까 당연하다.) 실패의 좌절보다 시작의 설렘이 더 큰 것도 알고, 잃었을 때의 아픔보다 가졌던 기간의 기쁨이 더 컸다는 것도 아는데, 뭐가 무서워서 또 문지방에 앉아있는지 모르겠다. 막상 시작하면 잘한다는 거 내가 아는데,

    내일도 시작, 모레도 시작, 다음 주도, 다음 달도 시작이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사무적으로 시작이 계속된다. 시작을 앞두고 우울해 하는 것도 습관인데, 습관이라도 치부하고 넘겨버리면 또 앞질러 나간 감정이 알아서 날 이끌어 줄까? 맘 편히 파도에 몸을 맡겨 놓으면 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원더랜드에서 속없이 신나하고 있을까?

    참 오늘 충동적으로 아침 수영을 등록했는데, 과연 결과가 어찌 될지 참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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