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기를 쓰고 2주가 지났다. 그 사이 세상이 바뀔 줄은 몰랐지. 지난주엔 만년필과 다이어리를 샀다. 12월이 절반이나 지났고, 실업급여가 거의 끝을 보이고 있는데 나는 대책이 없다. 이제 슬슬 진짜 걱정을 해야 한다. 저축액은 없고, 월 고정 지출은 견고하다. 살려주세요.
역마살 또한 견고해서 집에 붙어있는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심지어 집에서 잔 날도 손에 꼽는 듯하다. 거의 매일 시, 도를 넘나든다. 이것도 참 팔자다 싶은데 다행히 성격과 맞는다.
지난 직장 덕분에 앵간한 정치 이슈가 있어도 함구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최근에 좀 터졌다. 그럴만도 하지 뭐, 계엄당일, 군대가 국회에 진입했을 때는 실제로 좀 긴장을 했다. 역시 시대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귄위에 저항하는 사람(주로 여성)을 깎아 내리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권위를 인정하고 순응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사실 요즘도 아니라 요 몇 년 간 수도없이 봐왔지, 그 과정에서 보통 그들은 문맥을 잃는다. 동덕여대 학생들을 욕하기 위해 대학을 자본의 소유물임로 격하시킨 문맥은 곧 노란봉투법의 반대로 흘러가겠지, 계엄군의 총을 잡은 여성을 욕하기 위해서 (있지도 않았던) 계엄군의 실탄무장과 발포를 인정함으로써, 곧 계엄을 인정하게되고, 또 그 논리가 결국 518까지 흘러갈거라는 문맥을 짚지 못한다. 저항을 깎아내리기 위해 자본을 인정하고, 권력을 인정하고, 시스템을 인정하고, 관례를 인정하는 그 메커니즘이 이제야 조금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이 황당한 계엄이 파괴한 것을 이야기하며 주권보다는 주가를 이야기한다. 경제적 피해가 있어야 피해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락카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주권을 쉬이 무시할 수 있는 세상이다. 경제적 주권이 곧 주권인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전자는 언제든 후자를 배신할 수 있다. 그 침식이 잘못은 아니지만 자랑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민이 꼭 정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대부분 토론할 생각도 없는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이라 보통 답변하지 않는다. 그러면 꼭 그 다음에 나오는 예가 요순시대다. 아니 그건 역사가 아니라 전설이잖아?! 그 앞에서 왕정이니, 민주주의니, 역사니, 발전이니, 주권이니 하는 말들을 쉬이 고르지 못한다. 당연한 이야기는 종종 너무 유치하게 들려서 입안에서 걸린다.
언젠가 혼자 백반집에서 굴비정식을 먹고 있었는데, 식당 아주머니들의 대화가 들렸다. 경제가 힘들다. 먹고 살기가 힘들다. 삼성이 잘해줘야 한다. (식당의 에어콘과 티비는 엘지였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어떤 인간은 하필 폭군 치하에서 태어난 팔자는 받아들이지만, 주권과 의무가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것은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어떤 인간은 주권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억압을 택한다고.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종종 전봇대 하나를 세우기 위해서 1년 동안 100명과 토론해야 하는 제도라고 이야기한다. 요순시대엔 그냥 세웠겠지. 당연히 비효율적이고 느리다. 그 탓에 가끔 필요한 전봇대를 세우지 못하기도한다. 매주 통과되는 법안 한 줄의 배경을 설명하자면 영화 한 편 분량의 페이퍼는 너끈히 필요하다. 그 페이퍼는 수십개의 기사를 압축한거고, 그 기사는 수십명의 인생을 압축한거다.
그걸 가지고 또 수많은 사람들과 토론을 해야 하고, 동의를 얻어야 하고, 설득해야 하고, 싸워야 하고, 양보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전봇대 하나를 세운다. 이 과정이 보통 니가 진저리 치는 ‘정치’다. 나는 인류가 이 비효율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이 비효율이 민주주의의 숭고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정치에 관심없다는 말이 구구단을 못외웠다는 말처럼 좀 더 부끄러운 말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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