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를 쓸 때마다 만날 바쁘다는 말만 하고 있다. 원래는 바쁘면 안되는 반년이었는데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냈다. 정신없이 쓴 카드값 때문이기도 하고 스스로 평안을 못 찾은 탓도 있을 거다. 실은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쉬기도 좀 쉬고, 글도 쓰고, 여행도 좀 다니려 했는데 영영 못하게 되었다.
돈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미스테리다. 분명 계산을 하면 딱 들어 맞겠지만, 혼자 누워서 러프하게 생각을 해보면 정말 돈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뭉텅뭉텅 나간게 없진 않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정말 올해는 여러모로 미스테리가 많은 해다.
12월이 되었다. 내년에 이제 실업급여가 끝나면 어떻게 살지? 아직 계획이 없다. 이러다 또 어영부영 살아지고 후회하려나… 주기라고는 하지만 한 주를 정리할 수 있을리는 없고, 쓰는 지금의 상태가 글의 분위기를 좌우할텐데, 지금은 좀 가라앉은 상태다.
월요일엔 성남, 화요일엔 구로에 있다가 수요일에 집으로 왔다.
운전을 시작한 이후로 기록적인 날에는 늘 도로에 있게 되는 징크스가 있는데, 몇 년 전 기록적인 폭설에도 도로에 8시간을 갇혀 있었고, 차가 절반 정도 잠긴 폭우에도 도로에 갇혀서 중간에 차를 세우고 숙박업소에서 하루를 보냈다. 이번 주 폭설에도 여지없이 도로에 있었고, 서울에서 한 세시간 정도 걸려서 집으로 왔다.
다음날엔 집에 얌전히 있으려 했는데 급한 일이 생겨 또 성남으로 호출되었고, 저녁엔 서울로 가고, 금요일엔 강남으로 가 한시간짜리 커핑클래스를 들었다. 저녁엔 약속이 있어서 노무현 재단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고 덕분에 ‘아몬드’를 읽었다.
퇴근시간 서울을 통과하면서 문득 난 앞으로 자존감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밀레니엄들은 결국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서 사는걸 텐데 올 겨울 자존감을 채울 방법이 다소 묘연하다.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게 싫어서 반사적으로 외부자극을 끌어오는 습관이 있는데 올해에는 좀 들여다 볼 필요도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것도 한다고 바로 되는게 아닐텐데, 어찌됐든 난 스스로를 소비하는데는 영 서툰 타입인가 보다. 하루 종일 생각을 하고 있는데 왜 남는 게 없을까?
살이 많이 쪘다. 요즘 저녁마다 맥주를 먹는 게 다시 습관이 된 탓이다. 다시 맥주를 끊고, 운동을 해야 한다. 먹는 것도 다시 재미가 들려 요즘엔 맨밥만 먹어도 맛있다. 내일을 굴밥을 해먹을 참이다.
바쁜 와중에 가끔 하루를 쉬면 꼭 자책으로 가득 찬 하루를 보낸다. ‘혼자 시간을 쓰는 것’과 ‘집에서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걸’ 평생 연습한 거 같은데 평생 실패한다. 생각해보면 결국 그래서 좀 쉬겠다는 아주 쉬운 계획도 실패했다.
하긴 근데 성공적으로 쉬어도, 성공적으로 쉬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었는데 등등의 자책을 했을 거 같긴 하다. 루틴이 없었기 때문에 무얼해도 분명히 실패했을 거다. 얏호!
일분 일초, 임시로 흐르는 시간은 한순간도 없을텐데, 나는 5분만, 30분만, 1시간만 하면서 임시로 시간을 보내다가 하루를 다 보내는 것 같다. 조금만 솔직해 진다면 무엇이 내 자존감을 채우는 지 알 수 있을텐데, 늘 모든 시간을 임시로만 보내다 보니 본격적으로 솔직해지는 시간을 마주하기가 싫다.
이런 버릇을 좀 고치고 싶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또 이렇게 살고 있다. 12월이다.
사진은 기억은 안나지만 대충 한 15년 전에 성남에서 찍은 사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