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말이 없고, 할 말이 없다. 요즘의 가장 큰 고민이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사유를 하고 있는데, 왜 쓸 말이 없고 할 말이 없을까? 늘 하는 말이지만 20대에는 게임만 하고 술만 먹어도, 할 말이 넘쳐서 주워담지도 못했는데, 요즘엔 머리를 굴려봐도 할 말이 없다. 정말이지 참 우울한 일이다.
오디오북을 굉장한 기세로 듣고 있다. 추리소설만 듣고 있긴 하지만, 벌써 히가시노게이고의 갈릴레이 시리즈를 다 들었고, 요즘엔 다른 추리소설을 듣고 있다.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문체에 익숙해졌는지 다른 작가의 문채가 영 불편해서 이걸 다 듣고 나면 다시 히가시노 게이고로 넘어갈 생각이다.
멍하니 의미없는 시간을 보낸 일주일인 것 같지만 돌이켜보면 참 바쁘게 보냈다. 주 초엔 친구네 집에서 성 패트릭 데이인가를 기념하고 여럿이서 영화를 봤다. ‘이니셰린의 벤시’ 였던가, 인상 깊은 영화였다. 역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서사는 자유롭게 확장된다.
그러고 보니 산책을 많이 하기도 했다. 연인의 일정에 운전을 해주고, 일정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서 인근을 산책했는데, 모처럼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한 주를 거의 성신여대 인근을 걸어다니며 보낸거 같다.
그리고 PPT로 포트폴리오와 자기소개서를 꾸렸다. 이게 생각해보면 참 웃긴 일인데, 지원은 거의 하지 않고 계속 지원공고만 스크랩하고 자기소개서만 꾸리고 있다. 삶을 어떠한 형태로 결정한다는 게 나한텐 영 어려운 일인가 보다. 생각해보면 20대에도 그랬다. 나는 늘 아르바이트를 하고 일을 했기 때문에 취업도 빠르게 결정할 거라고 믿었지만, 잠깐 하고 말 것 같은 아르바이트하고 삶의 형태가 결정되는 취업하고는 결이 완전히 달랐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된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늘 두려웠다.
그래도 돈이 없었기에 당시엔 결국 융단폭격을 하듯이 입사지원을 했고, 여러 곳에 면접을 보러다니고 실제로 여러 곳에 합격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취업에 실패했다. 합격한 회사에서 내가 버티지 못하고 나와버렸다. 원인이 무얼까 고민해봤는데, 내가 삶이 결정된다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았나 싶다. 혹은 사실 내가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들키기 전에 도망간 건 아닐까?
구직공고를 주욱 둘러보다가 프리랜서 PPT 제작자 공고가 많은 걸 보고 차라리 PPT프리랜서로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PPT 포트폴리오와 자기소개서를 만들어서 프리랜서를 구하는 업체에 주욱 돌렸다. 그리고 주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한테도 직접 지원과 조언을 구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평생을 프리랜서로 살았다. 전직장도 정직원으로 출근을 한 건 3년이 채 안되고, 늘 프리랜서로 고용이 되어있었고, 다른 작업과 함께 투잡을 하면서 살아온 게 지난 10년이었다. 덕분이 늘 쪼들렸던 게 그 결과인데, 같은 선택을 한다는 게 어쩌면 아이러니하고 편안한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잘 할 수 있느냐? 사실 잘 모르겠다. 일이야 오는 대로 받아서 쳐낸 게 1000번도 넘는 데 어째 아직까지도 확신이 없다.
문득 지난 여름의 주간윤세민을 읽어봤다. 참 평온한 일상이었다. 근데 돌이켜보면 그때도 돈때문에 걱정하고 있었고 돈을 빌리고 갚고 있었다. 또 진로와 미래도 여전히 걱정하고 있었는데 일상을 보면 운동하고, 술마시고, 노래방을 가고 참 여유롭고 즐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늘 그렇다, 나는 늘 걱정하면서, 늘 즐거운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다. 여기서 걱정만 빼면 될 일인데, 평생을 지적당해도 평생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록이 참 중요하다.
지난 주말엔 술에 취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었다. 집에서 아내랑 술을 마시다 아내는 먼저 자고 혼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회사생활이 힘들다는 얘기, 일이 힘들다는 얘기를 들어주다가 나는 일이 없어서 힘들다고 했더니 그 친구가 ‘아휴, 너처럼 열심히 산 애가 왜 일이 없냐’ 고 말을 했다. 순간 벙쪘다. 아 이 말이 내가 듣고 싶었구나. 싶었다. ‘열심히 살았다.’ 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주간윤세민’은 늘 술을 마시면서 쓴다. 다 쓸 때 쯤이면 취해있다. 나를 위로하고자 시작한 일이지만 사실 이것도 꽤 고통스럽고 부끄러워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견디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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