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윤세민

제목202505222025-07-06 03:06
작성자 Level 10

이게 밤에 안쓰고 낮에 쓰려고 하니까 숙제처럼 되버리는 구나… 밤에 쓰는건 쓰는 시간 자체가 나를 치유하는 시간이었는데, 낮에 쓰니까 그냥 업무같은 느낌이 든다. 참 세상 일이라는 게 이렇게 어렵다.

오늘 수영을 못갔다. 수영시간 몇시간 전에 일어나서 소파에 누워있었는데, 그만 30분 전에 잠들어서 수영시간 5분 전에 깼다. 가는데 10분, 옷을 갈아입고 샤워하는데 5분이 걸린다 치면 약 15분 전에 출발하면 되는데, 고 직전에 설풋 잠이 들었다. 일이 이렇게 되면 그냥 오늘은 못가는 운세였나 보다 싶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로 신세를 저주하면서 출근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이 일의 큰 메리트다. 특히나 평생 아침시간을 힘들어 했던 나로서는 오전시간을 여유로이 보낸다는 게 꽤 괜찮다. 근 2달 동안 이 오전시간에 큰 맘 먹고 운동을 가거나, 혹은 소파에 눈감고 누워서 생각을 비우는데 시간을 썼다. 근데 2달이 지나니 이 시간을 뭔가 의미있게 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근데 수영이나 운동은 왜 안가지?

한편 지피티는 나한테 의미없는 시간을 보낸 것에 너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충고해주었다. 세상에.. 내가 ‘좆같은 거나 만들면서 의미없이 살고싶다!’ 라는 문장을 분석해달라 시킨 적이 있었는데, 그 발화로 보아하니 내가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굉장히 경계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타입이라는 거다. 아니 이렇게 용할수가 있나?

평생 점성술이나 사주 등을 굉장히 무시했는데, 최근 지피티로 보는 사주를 맹신하고 있다. 매일 아침 루틴이 지피티한테 사주를 물어보는 걸로 시작해서, 죙일 물어본 걸 또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까 점을 보는 사람들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사실 생에 있어서 뭐가 답이고, 뭐가 아닌지는 어차피 아무도 모르고 의미도 없다. 설사 과거의 일이라고 하더라고, 그게 답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지금도 판단이 불가능하다. 어차피 길도 없는 황망한 대지에서 그냥 여기로 가라는 의미없는 이정표라도 있으면 마음이 다소 편해진다. 평생 중요한 결정을 동전으로 결정했다는 어느 경영자의 이야기와 같은 원리인가 보다. 어쨌든 지피티가 이번주는 안좋은 주라고 했으니까 안좋은 일이 생기면 그냥 사주탓이지 내 탓이 아니다.

어제 처음으로 학부모 상담을 했다. 어제 35명을 다 끝내버리려고 했는데, 어림도 없었다. 10명 상담하고 털썩 지쳐버렸다. 한 명을 상담하면 기가 쪽 빨려서 5분은 쉬어야 했다. 게다가 이름을 아무리 봐도 도무지 누군지 기억이 안나는 아이도 있고, 심지어는 A인줄 알고 상담을 했는데 끊고 보니 걔가 아니었던 적도 있다. B의 부모님에게 A의 이야기를 했는데, 신기한 점은 아이의 부모님이 연신 ‘맞아요! 선생님!’ 하면서 내 말에 가장 큰 동조를 보인 부모님이었다는 거다. 역시 바넘효과…

전에 있던 조직과는 도무지 상식이 다른 학원의 정치와 업무를 보면서 어제 약간 질리는 일이 있었는데, 오늘 우연히 구직할 때 내가 보냈던 이력서 목록을 보고 약간 정신이 들었다. 아니 저 회사들이 다 답을 안 줬단 말이야? 좋아하는 일을 하고, 멋있는 것들을 만들어 내면서 사는 사람들을 보다보면 자꾸 박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인데,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못하는 건 또 아니니까 괜히 내가 스스로 속을 시끄럽게 만들 필요는 없겠지. 읏차!

13시간씩 이틀을 근무하는 주말 근무가 끝나면 휴일에는 차를 끌고나가 동묘나 종묘, 을지로를 산책한다. 야장 시즌이다 보니 골목 곳곳마다 자리가 펴져있고 다정함이 흘러 넘친다. 수십년 기름밥을 먹은 철물점 아저씨의 권태와, 바쁘게 돌아다니는 오토바이들, 그리고 반대로 여유를 찾아온 젊은 방문객들이 만든 풍경을 보다가 또 괜시리 궁상에 빠질것 같아 일부러 순댓국을 한그릇 먹고 급히 집으로 왔다. 다음엔 연인과 같이 와야겠다.


스크린샷 2025-07-06 111512.jpg
https://www.instagram.com/p/DJ8Oe8xRlTzksxYKvuvArmURWyh-jbgP656XAU0/?img_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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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밤에 안쓰고 낮에 쓰려고 하니까 숙제처럼 되버리는 구나… 밤에 쓰는건 쓰는 시간 자체가 나를 치유하는 시간이었는데, 낮에 쓰니까 그냥 업무같은 느낌이 든다. 참 세상 일이라는 게 이렇게 어렵다.

    오늘 수영을 못갔다. 수영시간 몇시간 전에 일어나서 소파에 누워있었는데, 그만 30분 전에 잠들어서 수영시간 5분 전에 깼다. 가는데 10분, 옷을 갈아입고 샤워하는데 5분이 걸린다 치면 약 15분 전에 출발하면 되는데, 고 직전에 설풋 잠이 들었다. 일이 이렇게 되면 그냥 오늘은 못가는 운세였나 보다 싶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로 신세를 저주하면서 출근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이 일의 큰 메리트다. 특히나 평생 아침시간을 힘들어 했던 나로서는 오전시간을 여유로이 보낸다는 게 꽤 괜찮다. 근 2달 동안 이 오전시간에 큰 맘 먹고 운동을 가거나, 혹은 소파에 눈감고 누워서 생각을 비우는데 시간을 썼다. 근데 2달이 지나니 이 시간을 뭔가 의미있게 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근데 수영이나 운동은 왜 안가지?

    한편 지피티는 나한테 의미없는 시간을 보낸 것에 너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충고해주었다. 세상에.. 내가 ‘좆같은 거나 만들면서 의미없이 살고싶다!’ 라는 문장을 분석해달라 시킨 적이 있었는데, 그 발화로 보아하니 내가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굉장히 경계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타입이라는 거다. 아니 이렇게 용할수가 있나?

    평생 점성술이나 사주 등을 굉장히 무시했는데, 최근 지피티로 보는 사주를 맹신하고 있다. 매일 아침 루틴이 지피티한테 사주를 물어보는 걸로 시작해서, 죙일 물어본 걸 또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까 점을 보는 사람들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사실 생에 있어서 뭐가 답이고, 뭐가 아닌지는 어차피 아무도 모르고 의미도 없다. 설사 과거의 일이라고 하더라고, 그게 답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지금도 판단이 불가능하다. 어차피 길도 없는 황망한 대지에서 그냥 여기로 가라는 의미없는 이정표라도 있으면 마음이 다소 편해진다. 평생 중요한 결정을 동전으로 결정했다는 어느 경영자의 이야기와 같은 원리인가 보다. 어쨌든 지피티가 이번주는 안좋은 주라고 했으니까 안좋은 일이 생기면 그냥 사주탓이지 내 탓이 아니다.

    어제 처음으로 학부모 상담을 했다. 어제 35명을 다 끝내버리려고 했는데, 어림도 없었다. 10명 상담하고 털썩 지쳐버렸다. 한 명을 상담하면 기가 쪽 빨려서 5분은 쉬어야 했다. 게다가 이름을 아무리 봐도 도무지 누군지 기억이 안나는 아이도 있고, 심지어는 A인줄 알고 상담을 했는데 끊고 보니 걔가 아니었던 적도 있다. B의 부모님에게 A의 이야기를 했는데, 신기한 점은 아이의 부모님이 연신 ‘맞아요! 선생님!’ 하면서 내 말에 가장 큰 동조를 보인 부모님이었다는 거다. 역시 바넘효과…

    전에 있던 조직과는 도무지 상식이 다른 학원의 정치와 업무를 보면서 어제 약간 질리는 일이 있었는데, 오늘 우연히 구직할 때 내가 보냈던 이력서 목록을 보고 약간 정신이 들었다. 아니 저 회사들이 다 답을 안 줬단 말이야? 좋아하는 일을 하고, 멋있는 것들을 만들어 내면서 사는 사람들을 보다보면 자꾸 박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인데,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못하는 건 또 아니니까 괜히 내가 스스로 속을 시끄럽게 만들 필요는 없겠지. 읏차!

    13시간씩 이틀을 근무하는 주말 근무가 끝나면 휴일에는 차를 끌고나가 동묘나 종묘, 을지로를 산책한다. 야장 시즌이다 보니 골목 곳곳마다 자리가 펴져있고 다정함이 흘러 넘친다. 수십년 기름밥을 먹은 철물점 아저씨의 권태와, 바쁘게 돌아다니는 오토바이들, 그리고 반대로 여유를 찾아온 젊은 방문객들이 만든 풍경을 보다가 또 괜시리 궁상에 빠질것 같아 일부러 순댓국을 한그릇 먹고 급히 집으로 왔다. 다음엔 연인과 같이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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