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윤세민

제목202508012025-08-01 11:51
작성자 Level 10


여행


혼자 방콕을 다녀왔다. 혼자 여행을 한다는 건 마치 개복치를 데리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여행메이트가 있을 때는 계획에 따라 혹은 토론을 하여서 일정을 정하는 데, 혼자가 되니 모든걸 혼자 정해야 한다. 그냥 쉬겠다는 것 말고는 계획도 없이 떠난 여행이라 카오산 로드 말고는 다른 곳으로 관광을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싶은지, 내가 지금 뭘 하면 좋을지는 계속 고민해야했다. 여행 중에 갑자기 ‘괜히 혼자 여행와서 돈만쓰고 이게 뭐하는 거람’ 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했다.

일단 러프한 계획은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드러누워 여유롭게 책읽기, 카오산의 식당에서 볶음밥이랑 맥주 먹으면서 여유롭게 책보기, 밤에는 바에서 칵테일 마시면서 여유롭게 책보기, 여유롭게 마사지 받기 등이 있었다. 그런데 숙소에 체크인하고 12시간만에 그 모든걸 다 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수영장에 가서 책을 읽고, 점심 쯤 나가서 식당에 가서 맥주를 마시고, 마시지를 받고, 해가 지자 노천 바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원래 계획은 최대한 아무 의무감없이 여유롭게 다니고 싶은 여행이었는데, 저 러프한 계획을 무슨 퀘스트처럼 후다닥 깨버렸다는 뜻이다. 그리고 곧 당황했다. ‘어? 나 왜 이렇게 안절부절못하지?’ 새벽에 클럽 옆 노천식당에서 볶음밥과 맥주를 먹으면서 이 여행을 어떻게 보내지를 다시 한번 고민했다.

다음 날 일어나서 ‘오늘 뭐하지?’ 고민하다가, 이왕 고민할 거면 마사지를 받으면서 고민하는게 낫겠다싶어서 일단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마사지를 받고 나서도 고민이 끝나지 않아서 국수를 먹었고 먹고나서도 고민이 계속되고 맥주를 마셨고, 맥주까지 마시자 노곤해져서 또 마사지를 받았다. 그리고 노천 바에서 진토닉을 마시면서 책보고, 사람구경하고, 또 자리를 옮겨서 책보고, 사람구경 하다보니 대충 마지막 밤이 끝났다. 다행히 들고 온 책이 700페이지에 달해서, 부지런히 읽어도 모자르지 않았다. 그제서야, 여행을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날에 체크아웃을 하러 프론트에 갔더니 하루가 더 남았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 내가 예약을 잘못했나보다. 어차피 새벽 1시 비행기라서 오늘 밤에 편히 나가도 나쁠 건 없겠다 싶어서 다시 올라가 짐을 던져놨다. 그리고 왠지 차이나타운에 가고 싶어서 차이나타운의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가져온 책은 홍콩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이라서, 차이나타운에서 읽고 있으니 왠지 기분이 좋았다. 다음에 여행을 갈 때는 그 도시와 관련한 책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카오산으로 돌아와 또 마사지를 받고, 노천식당에서 햄버거와 맥주를 먹다가 숙소에서 느긋이 땀을 식히고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서 생각해보니 여행 중에 셀카를 한 장도 안찍었다.

해외여행을 총 7번을 다녀왔는데, 비효율적이게도 4번이 일본이었고, 3번이 태국이었다. 한 여행지를 가면 몇 번이고 거길 가서 그 여행지를 졸업하는게 내 여행 스타일인가 보다. 덕분에 이제 일본이랑 태국은 안가도 될 것 같다. 다음엔 홍콩을 가거나, 아니면 아예 돈을 모아서 유럽이나 미국을 가봐야겠다.


취미

글을 쓰는데 재미가 약간 붙었다. 올해들어 내가 글을 못쓴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글을 못쓴다는 걸 받아들이자, 오히려 쉽게 써졌다. 이게 뭐 돈주고 파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평생 꼴값떠는건데, 못써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소 유치한 범죄소설도 쓰고, 뉴스아카이브 원고도 재미있게 만지고 있다. 내신이 끝나고 어쩐지 학원에서 일을 안시켜서 평일에는 거의 아무것도 안하고 내 글이나 만지작거리고 있다. 수업 준비가 좀 난감하긴 한데, 오래 붙잡는다고 좋은 것도 아닌 것 같아서 보통 하루에 수업용 피피티까지 다 끝내버린다. 물론 머지않아 또 무슨 봉변을 당할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지금으로써는 너무 좋은 직장이다. 보람이 없다는 게 문제긴 한데…


주말

내일부터 주말이다. 나로선 일년 중 유일하게 ‘쉬는 주말’이다. 그런데 뭘 해야 할지 아직 정하질 못했다. 오늘 약간 기분이 황망해서 홧김에 당장 펜타포트를 결재해서 갈까 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상반기 내내 돈지랄을 했으니 이제 돈을 모으고 빚을 갚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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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혼자 방콕을 다녀왔다. 혼자 여행을 한다는 건 마치 개복치를 데리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여행메이트가 있을 때는 계획에 따라 혹은 토론을 하여서 일정을 정하는 데, 혼자가 되니 모든걸 혼자 정해야 한다. 그냥 쉬겠다는 것 말고는 계획도 없이 떠난 여행이라 카오산 로드 말고는 다른 곳으로 관광을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싶은지, 내가 지금 뭘 하면 좋을지는 계속 고민해야했다. 여행 중에 갑자기 ‘괜히 혼자 여행와서 돈만쓰고 이게 뭐하는 거람’ 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했다.

    일단 러프한 계획은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드러누워 여유롭게 책읽기, 카오산의 식당에서 볶음밥이랑 맥주 먹으면서 여유롭게 책보기, 밤에는 바에서 칵테일 마시면서 여유롭게 책보기, 여유롭게 마사지 받기 등이 있었다. 그런데 숙소에 체크인하고 12시간만에 그 모든걸 다 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수영장에 가서 책을 읽고, 점심 쯤 나가서 식당에 가서 맥주를 마시고, 마시지를 받고, 해가 지자 노천 바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원래 계획은 최대한 아무 의무감없이 여유롭게 다니고 싶은 여행이었는데, 저 러프한 계획을 무슨 퀘스트처럼 후다닥 깨버렸다는 뜻이다. 그리고 곧 당황했다. ‘어? 나 왜 이렇게 안절부절못하지?’ 새벽에 클럽 옆 노천식당에서 볶음밥과 맥주를 먹으면서 이 여행을 어떻게 보내지를 다시 한번 고민했다.

    다음 날 일어나서 ‘오늘 뭐하지?’ 고민하다가, 이왕 고민할 거면 마사지를 받으면서 고민하는게 낫겠다싶어서 일단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마사지를 받고 나서도 고민이 끝나지 않아서 국수를 먹었고 먹고나서도 고민이 계속되고 맥주를 마셨고, 맥주까지 마시자 노곤해져서 또 마사지를 받았다. 그리고 노천 바에서 진토닉을 마시면서 책보고, 사람구경하고, 또 자리를 옮겨서 책보고, 사람구경 하다보니 대충 마지막 밤이 끝났다. 다행히 들고 온 책이 700페이지에 달해서, 부지런히 읽어도 모자르지 않았다. 그제서야, 여행을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날에 체크아웃을 하러 프론트에 갔더니 하루가 더 남았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 내가 예약을 잘못했나보다. 어차피 새벽 1시 비행기라서 오늘 밤에 편히 나가도 나쁠 건 없겠다 싶어서 다시 올라가 짐을 던져놨다. 그리고 왠지 차이나타운에 가고 싶어서 차이나타운의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가져온 책은 홍콩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이라서, 차이나타운에서 읽고 있으니 왠지 기분이 좋았다. 다음에 여행을 갈 때는 그 도시와 관련한 책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카오산으로 돌아와 또 마사지를 받고, 노천식당에서 햄버거와 맥주를 먹다가 숙소에서 느긋이 땀을 식히고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서 생각해보니 여행 중에 셀카를 한 장도 안찍었다.

    해외여행을 총 7번을 다녀왔는데, 비효율적이게도 4번이 일본이었고, 3번이 태국이었다. 한 여행지를 가면 몇 번이고 거길 가서 그 여행지를 졸업하는게 내 여행 스타일인가 보다. 덕분에 이제 일본이랑 태국은 안가도 될 것 같다. 다음엔 홍콩을 가거나, 아니면 아예 돈을 모아서 유럽이나 미국을 가봐야겠다.


    취미

    글을 쓰는데 재미가 약간 붙었다. 올해들어 내가 글을 못쓴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글을 못쓴다는 걸 받아들이자, 오히려 쉽게 써졌다. 이게 뭐 돈주고 파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평생 꼴값떠는건데, 못써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소 유치한 범죄소설도 쓰고, 뉴스아카이브 원고도 재미있게 만지고 있다. 내신이 끝나고 어쩐지 학원에서 일을 안시켜서 평일에는 거의 아무것도 안하고 내 글이나 만지작거리고 있다. 수업 준비가 좀 난감하긴 한데, 오래 붙잡는다고 좋은 것도 아닌 것 같아서 보통 하루에 수업용 피피티까지 다 끝내버린다. 물론 머지않아 또 무슨 봉변을 당할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지금으로써는 너무 좋은 직장이다. 보람이 없다는 게 문제긴 한데…


    주말

    내일부터 주말이다. 나로선 일년 중 유일하게 ‘쉬는 주말’이다. 그런데 뭘 해야 할지 아직 정하질 못했다. 오늘 약간 기분이 황망해서 홧김에 당장 펜타포트를 결재해서 갈까 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상반기 내내 돈지랄을 했으니 이제 돈을 모으고 빚을 갚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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