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심심해 미치겠다. 월화수목금토일 모두 너무 심심하다. 심심한 나머지 뉴스아카이브 원고도 꺼내서 정리해보고 이렇듯 홈페이지도 만들어보고, 글도 써보고 책도 읽어보고 하는데도 늘 심심해서 짜증이 나 있는 상태다. 어쩜 이렇게 만날사람도 없고, 수다 떨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고, 재밌는 게 없을까?
무슨일인지 학원에서 평일에 내가 맡은 1학년을 똑, 떼어서 2학년을 맡은 선생님에게 줬다. 게다가 교무실에 찌그러져 있던 나를 빼서 강의실에 내 책상을 만들어줬다. 나야 전부다 좋은 일이긴 한데, 이유를 모르겠다. 본사 교재제작팀으로 보낸다던가, 하는 일이면 좋겠는데, 학원 사정상 그러지도 못할거 같고, 나중에 교재 제작팀으로 부르겠다는 대표는 그 사이 사람을 따로 뽑은거 같다. 나 원 참.
그래서 텅 빈 강의실에 혼자 앉아 있는게 수, 목, 금의 내 할일이다. 뭐 수업 준비할 것도 많고, 애들이 개발괴발 써놓은 거 첨삭도 해야 하니 할 일이 없는건 아닌데, 그래도 꽤 멍- 하다. 에어컨 소리만 들으면서 NPC처럼 앉아 있는게 요즘 일이다. 한번은 논술 숙제검사를 맡으러 온 학생이 날 보더니 “선생님은 여기서 혼자 뭘하고 계시는 거에요?” 라고 물어서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뉴스 아카이브 원고를 열어서 글을 다시 쓰고 있고, 책도 읽고, 수업준비도 촘촘따리 하고는 있는데, 그래도 여전히 하루 종일 심심해 죽겠다. 아니 말이 나와서 말인데, 다음 수업이 이육사를 내재적 관점, 작가적 관점, 시대적 관점, 세가지 방법으로 비평해보라는 건데, 나도 못하는 걸 중2한테 어떻게 가르칠지 정말이지 고민이 많다. 1학년은 한술 더 떠서 작품이 카프카의 ‘변신’이다.
오늘은 집에 누워있다가 너무 심심해서 혼자 술먹을만한 술집을 검색해 봤다. 신림에 주인장이 말을 잘 걸어준다는 바가 있다길래 (예전 같으면 근처도 안갔겠지만) 한번 가볼까? 했는데, 화요일은 휴일이었다.
심심하고 시간이 많은 만큼 뭐라도 열심히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야 늘 하고, 실제로 뭘할까 고민도 하고, 이것저것 하고 있기도 한데, 도무지 흥이 안난다. 아무도 줍지 않는 아이템처럼 방치되어 있다가 소멸하는게 아닐까 싶은 느낌이다. 예찬할 게으름도 없고, 무료함이 쌓이면 짜증이 된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2. 베스파
가 있다는 걸 자꾸 까먹는다. 전에 엔진오일을 갈러 갔더니, 점검을 한번 받아보라길래 오늘 판교에 있는 베스파지점에 다녀왔다. 편도 30분으로 스쿠터를 타기 시작한 이래 가장 장거리였다. (운동갈 때 만 탄다.) 가기 전에 예전에 사두었던 헬멧용 블루투스를 연결했는데, 아무리 쿠팡에서 싼걸 샀다고 해도 음질이 해도해도 너무 했다. 싼걸 샀다고 해도 6만원 짜린데, 예전에 급해서 산 5천원짜리 이어폰 소리가 났다. 누군가 ‘나는 음질같은거 신경 안써’ 라고 한다면 들려주고 싶을 정도의 깡통소리였다. 에잉…쯧쯧… 하면서 산길을 넘어가고 있었는데, 마침 ‘The Pillows’의 노래가 나왔다. 어라?
‘그러고 보니 나 지금 베스파를 타고 ‘The Pillows’를 들으면서 텅빈 도로를 달리고 있잖아?’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FLCL이고 (타투도 있다.) ‘The Pillows’는 FLCL의 ost를 부른 밴드다. 그리고 베스파는 FLCL의 상징같은 바이크다. (타고 있는 것과 색은 다르지만) 오호라,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감격적인 순간을 맞았다. 돌아오는 길엔 FLCL ost를 들으면서 왔다. 집에 좀 누워있다가 영 다시 짜증이 올라와서, 다시 스쿠터의 시동을 걸고 왕송호수 근처로 갔다가 길을 잃고 비포장 도로에서 헤매다 집으로 왔다. 내친김에 내일은 베스파로 출근을 해볼까? (편도 1시간 거리다.)
3. GPT
에게 가차없이 비판해달라고 하는게 유행인가 보다. 역시 심심해서 해봤는데, 처음엔 좀 비판하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좋은 말로 밀당을 한다. 요즘 클로드를 쓰면서 GPT는 끊을까 고민을 좀 하고 있었는데 이래서야 끊을수가 없잖아.
이 무료함이 뭔가를 낳을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없는 건 아니다. 실제로 나는 많이 움직이고, 많은걸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사실 심심해서 짜증이 난다기 보다는 사람이 없어서 짜증이 나는 거 같다. 나도 40대는 처음이라 이런 고독감에는 경험이 없다. 그래도 무슨 일이든 일어나긴 하겠지, 늘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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