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월 20일 신창원 탈옥사건 부산교도소에 강도 치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중이던 신창원이라는 죄수가 탈옥했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뉴스가 아니었지만, 이후 신창원은 2년 반 동안이란 시간 동안 무려 4만여km의 거리를 도주하며 경찰을 따돌렸다. 처음에는 단순한 탈옥사건이었지만, 도주가 계속될수록 탈옥수 신창원은 점차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특히 부잣집만 골라서 터는 그의 범죄 양상 때문에 ‘의적’이라는 평가까지 받는데 이른다. 그가 검거되었을 때 입었던 화려한 무늬의 티셔츠가 일명 신창원 티셔츠라며 유행을 타기도 했다. 그야말로 신창원 신드롬이었다.
번번히 경찰의 포위망을 따돌리며 도주하는 탓에 그가 다녀간 곳마다 경찰들이 징계를 받고 퇴직되는 등의 인사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 덕분에 경찰의 인사적체가 해소되었다는 웃지 못할 평가도 있다.
1998년 7월 18일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눈의 띄는 인사조치가 있다. 17일 신창원 검거에 실패한 책임을 물어 OOO총경과 OOO청장을 인사조치하고,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외사과정을 수사 경찰 서장에 임명했다는 소식이다.
2009년 1월 19일 새벽, 용산 참사 신창원이 검거되고 12년이 지난 후 용산 철거현장 화재사건이 일어났다. 용산 재개발과 보상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재개발 보상금이 적다고 항의하는 상인과 주거 세입자들이 4층 건물을 점거하고 화염병 등 인화물질을 갖추고 농성중이었다. 경찰은 철거민들이 점거하고 있던 건물 옥상의 망루를 진압하기 위해서 크레인과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해 강제진압을 시도했다. 당초 진압계획에는 화학소방차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경찰은 이를 제외하고 진압직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진압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그로인해 망루가 무너지면서 농성자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당시 농성과 강제 진압과정의 폭력성, 그리고 사후 청와대와 경찰청의 대처, 여론조작 등의 논란을 불러왔다. 당시 대통령은 이명박, 서울 시장은 오세훈, 그리고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김석기였다.
사건이 발생하고 3일이 지난 1월 22일 KBS 100분 토론에서 ‘용산참사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토론이 진행되었다. 방송중에는 시청자들의 문자를 통한 투표도 함께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경찰청에서는 방송 도중 경찰관들에게 인터넷 여론조사에 참여하라는 문자가 발송를 발송했다.
또한 2월 3일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 이성호는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에서는 용산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군포 연쇄살인사건의 수사 내용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라는 메일을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보냈다 용산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하려고 하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의 수사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바랍니다. … 예를 들면 ▲연쇄살인 사건 담당 형사 인터뷰 ▲증거물 사진 등 추가정보 공개 ▲드라마 CSI와 경찰청 과학수사팀의 비교 … 용산 참사로 빚어진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연쇄살인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 — 청와대 행정관 이메일 당시 법정에서는 철거민 농성자 7명에게 징역 4~5년, 2명에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들은 정권이 바뀐 후에 특별사면되었다.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결국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경질되었다. 그러나 이후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 오사카 총 영사, 한국 공항공사 사장 등의 요직을 거치고, 2016년 새누리당에서 경북경주시에 공천되었다. 이 지역에서 보수정당의 공천은 곧 당선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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