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지 않았다. 가치관도 맞지 않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도 하지 못했다. 멀쩡한 상태에서의 우리는 서로의 이해할 수 없는 일상과 연애를 이야기하며 서로의 거리를 확인하는 대화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달을 안보다 보면 가끔 그 불편한 대화가 그리워 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취하고 나면 죽이 잘 맞았다. 우리는 서로 경멸하는 점을 이야기했고, 그 점에 서로 동감했다. 싫어하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싫어하는 이유보다는 싫은 감정 자체에 대해 공감했고, 또 그래서 니가 좆같은거라고 비난하면거 깔깔댔다.
많이 먹지 말자고 해놓고는 새벽 3시쯤엔 몇 병의 술을 비우고는 또 팔짱을 끼고 깔깔대며 술을 사러 나가고는 했다. 소주고, 막걸리고, 와인이고, 위스키고, 주종을 가리지 않고 비워댄 후엔 해가 어스름히 뜨고 있었고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엉망진창의 섹스를 했다.
섹스를 할 때면 언제 서로를 비난했고, 또 언제 경멸을 이야기 했냐는 듯이 세상 가장 예쁜 말만 늘어놓았고, 서로의 몸을 예찬했다. 우리가 서로를 ‘자기’라고 부르는 때는 섹스할 때 뿐 이었다. 애석하게도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배꼽이 잘 맞았다.
오후가 되어서야 지옥같은 침대에서 눈을 뜨면 서로의 시선을 피한 채 또 해버렸다는 자괴와, 또 했냐는 경멸과, 뭐 먹을래?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섹스를 한 적도, 서로 경멸한 적도 없는 것처럼 음식을 예찬하면서 해장을 했다.
곧 다시 보자면서 헤어지고는 또 몇 달을 연락하지 않았다. 그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섹스가 그리워지면 또 심드렁하게 연락을 했고, 만나자마자 근황을 비난하고, 또 엉망진창의 섹스를 했다.
그리고 또 연락을 하지 않는 몇 달 동안, 자위를 할 때마다 가장 많이 그리워 하는 건, 그 엉망진창의 섹스였다. 우리는 서로를 파괴하는 서로에게 가장 큰 위안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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