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 고르는거야?”
“상처로 자신을 조각한 사람, 자기 상처가 소중해 죽겠는 사람, 상흔을 내보이고 싶어 안달난 사람,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다는데 익숙한 사람”
“왜?”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거든,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가해자가 될 수 있어”
“왜 가해자가 되고 싶은거야?”
“나도 늘 피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가해자가 되어보고 싶었어, 내가 내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이랄까?”
알고만 지내던 사이였던 J가 어느날 연락을 했고, 약간을 술을 마시고는 방을 잡자고 제안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럴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순순히 응했다. 섹스가 끝난 뒤에, 왜 갑자기 연락을 했냐고 묻자, 그냥 가끔 자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연락해서 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사람을 잘 골라야 해, 거절하지 못한 사람으로, 상흔에 갇혀있는 사람들은 보통 섹스를 거절하지 못하거든”
“왜지?”
“너도 그랬잖아, 새로운 구원이 될거라 기대하는 거지, 너같은 사람들을 자기 인생의 키를 스스로 쥐지 않아, 그냥 좋은 곳으로 흘러가길 바라고 있을 뿐이지,”
확실히 그렇다. 인생의 키를 스스로 쥔다니, 그건 너무 무거우면서도 재미없는 일이다.
“왜 그런 사람들을 찾는거야?”
“상처가 있는 사람들을 껴안는 게 얼마나 매력적인지 너도 모르지 않을껄? 그리고,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사람이 침대에서는 끙끙대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귀엽고,”
방금 섹스를 끝낸 입장에서 불쾌할 수 있는 표현이지만, 불쾌하지 않았다. 뭐 지도 좋아했으니까, 내가 불쾌할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연애는 안 해?”
“하게 되면 하겠지, 그건 이거랑 다른 얘기야, 내가 연애를 하겠다는 건 또 다시 피해자가 되겠다는 거와 같잖아, 나는 그런 연애밖에 못하거든”
“자신을 피해자로 위치시키는데 익숙한 사람이랑 하면 되잖아? 그럼 가해자가 된 연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서로 자신이 피해자라고 악다구니를 쓰다가 헤어지게 되더라고, 내가 더 상처입었다면서, 알잖아 그거 권력인거”
정곡이었다. 나도 늘 내가 상처입었다는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쪽이었으니까.
“그럼 결국 가해자랑 연애를 하겠다는 거야?”
”아니, 내가 다시 피해자가 되는 것 까지 감수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한다는 거지, 피해자, 가해자 보다는 좋은 사람에 더 방점이 찍혀야 하지 않겠어?”
“그렇구나, 다음에 니가 연애를 하면 상대를 유심히 봐야겠네, 어떤 유형의 가해자인지,”
그 가해자는 곧 내가 되었고, 과연 나는 나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내가 스스로를 피해자로 위치시키고 싶어하는 욕망을 발견하면 늘 황급히 행동과 말을 수정했다. 그건 J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그날의 대화를 서로 의식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원이 거기 있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드는 걸 경계했고, 그래서 다행히 아무도 가해자가 되지 않았고, 그러자 비로소 연민이 아닌 연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에도 자고 싶은 사람이 종종 나타나?”
“가끔 눈에 띄긴 하지,”
“나 때문에 못 자는거야?”
“응, 내가 다른 남자를 자는 순간 넌 바로 피해자로 돌아가 버릴 거잖아, 내가 그 꼴은 못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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