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제목202504292025-07-06 02:53
작성자 Level 10

친구 중에 좆같은 새끼가 있었다. 얼마나 좆같은 새끼였냐면 나는 초등학교때 그새낄 보자마자 좆같은 새끼라는 걸 알아차렸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 새끼랑은 이후 20년이 넘게 친구무리로 지냈다. 하지만 20년이라는 세월동안 걔랑 나랑 단둘이 만났던 적인 한번도 없다. 난 늘 걔가 좆같은 새끼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친구들의 무리속에 같이 있으려면 걔랑도 친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간질, 따돌림, 험담을 늘 시도하던 친구였는데, 딱 한명을 축출시킨 것 빼고는 사실 전적이 없다. 한명이 축출되고 나자, 우리 사이에는 일종의 위기감이 싹텄고 그 위기감이 서로의 테두릴 지켰다. 갈등이 없진 않았지만, 이후로 우리는 허술한 테두리를 지키면서 무리를 유지했다.

무리를 지키면서 사춘기를 지내자, 모두가 느꼈다, 이 무리의 유지가 각자의 자아를 지탱하고 있다는걸, 이 무리가 무너지면 삶의 너무 큰 부분이 무너진다는 위기를 느꼈다. 그때부터 축출은 없었다. 따돌림은 있었지만 누군가가 축출되어 무리가 무너진다는 건 각자의 위기라는걸 알았기에, 따돌림이 조금 심각해지면 모두가 서둘러 그 구덩이를 메웠다. 물론 나도 따돌림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고, 내가 “이럴거면 씨발 니네끼리 놀아라” 라고 하자마자 모두가 구덩이를 서둘러 메운 순간도 기억이 난다.

정말로 자아를 지탱해주었냐고? 지탱 수준이 아니었다. 역사에 가정은 늘 흥미로운 가설이지만, 내 인생에 그 무리가 없었다면, 이라는 가정은 아예 상상이 불가능하다. 나는 조금 더 과장해서 우리 가정을 지켜준 것도 그 친구들이라고 생각한다.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친구들이 있었던 덕이지, 그 친구들이 없었다면 엄마 아빤 이혼하면서 더 험한 꼴을 보거나 이혼도 못했을 거다.

그런데 가끔씩 그 좆같은 새끼가 우리 무리속에 없었다면 이라는 생각은 한다. 우리 무리에서 축출이나 따돌림같은 개념을 가져온것도 그 새끼였고, 그 위기감을 가져온 것도 그 새끼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 새끼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모두가 우리 무리에 큰 소속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런데 20대 후반 쯤에 사건이 벌어졌다. 그 좆같은 새끼가 이 무리에서 사기를 친 것이다. 사건 밖에 있는 나는 정확한 경위는 모르지만 액수는 대충 몇천만원 대고, 피해를 당한 친구들은 그 몇천만원이 모두 사채빚이었다. (그 새끼가 사채빚까지 알선해 왔다.) 사건은 갑자기 벌어지지 않았고, 피해를 당한 친구들도 빚독촉에 시달리면서 느슨하게 그 새끼랑 몇년 간 관계를 이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30대가 되었고,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근근한 삶을 이을 뿐이었다. 피해를 당한 친구들은 이를 악물고 그 빚을 다 갚았고, 당연하다시피 그 새끼는 우리 사이에서 축출되었다. 나같은 경우엔 청첩장을 받았을 때, 이게 마지막이라는 다짐을 하고 찾아갔고, 정말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30 후반에는 그냥 가끔의 악명으로만 회자되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 새끼가 사라지자 마자 우리 사이가 흩어졌다. 몇번 모이려는 노력은 했고 실제로 모이기도 했지만, 지속되지 않았다. 일단 당장 내가 한 놈과의 절교를 선언했고, 이미 우리 모두와 절교를 선언한 다른 놈도 있었고 결혼을 기점으로 연락이 안되는 친구도 있었다. 다른 친구들도 그 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받아들였다. 그냥 각자의 삶을 살다가 가끔 운이 좋으면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된 것을 이미 받아들인 후였다. 삶의 위기 앞에서 관계의 위기는 발을 들일 틈이 없었다.

그제야 난 그 새끼가 없는 우리 관계를 가정할 수 있었다. 그 새끼가 없었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항속의 천적처럼 우리는 그 새끼가 없이는 뭉칠 수 없는 눈이었다. 지금와서 돌이켜 봐도 도무지 맞는 구석이 없는 놈들이었다. 결국 10대에 느꼈던 위기감이 맞았다. 우리 중 한명만 축출되어도 이 관계가 무너질거란 위기감이 맞았던 거다. 지냈던 세월이 있으니 언제라도 단톡한번이면 모이겠지만, 그리고 왁자지껄 떠들겠지만, 제삿날 참가한 며느리들의 모임일 뿐이다. 우리는 더이상 관계를 염려하지 않는다.

PS. 와중에 몇 놈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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