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제목202505072025-07-06 02:56
작성자 Level 10

사람들이 밝은 쪽을 보고 살라 했다. 달동네 계단참에 앉아 해바라기를 했다. 계단 사이 회색 시멘트를 뚫고 생생한 녹색 잡초가 올라와있다. 어느 폐가에는 덩굴들이 타고 올라가 집에 온통 꽃이 피었다. 고양이 한마리가 늘 지나던 길로 지나가려다 나를 보고는 흠칫 자리에 멈춰서더니 그대로 누워버린다. 온통 낡아버린 달동네에도 이렇게 생생한 풍경들이 있다.

뒤통수로 또각또각 구두소리가 난다. 아무렴 사람 사는 동네니, 출근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저 여성의 풍경은 앞으로 한시간동안 달동네, 시내, 지하철, 그리고 세련된 직장으로 바뀐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엔 그 역순으로 다시 바뀐다.

달동네에 앉아 있던, 직장에 앉아있던 어디서도 아무래도 생경한 내 모습도 사람들에겐 풍경이다. 스스로 객관화시켜 보려해도 쉽지 않다. 살아온 기억과 나눴던 애정이 가득 끼어 아무래도 풍경에 녹아들지 못한다.

원죄가 아니더라도 죄는 충분히 지었다. 철학을 논할 필요도 없이 어설픈 삶이다. 그럼에도 삶이 참 아득하다. 잡초옆에서 볕을 쬐며 고양이를 보는 순간에 대한 책임감이 무겁다.

묵직한 상체와 휘청거리는 하체를 움직여 일어난다. 고양이가 흠칫 놀란다. 옷을 갈아입고 시내로 나가야 한다. 죄를 질책하고 철학을 논하러 술집을 기웃거릴수도 있겠다. 시간을 보내다보면 작은 애정을 나눌 수도 있겠다. 백열등 밑에서 김치찌개 냄새를 맡으며 농담과 자기혐오를 신나게 버무리다보니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스크린샷 2025-07-06 11144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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