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에 술을 마시고나면 꼭 일정 시간을 걸어야 했다. 당연히 그 시간은 거의 집에 가는데 썼는데, 가끔은 욕심히 과해서 잠실이나 신천, 강남에서 성남까지 걸어오기도 했다. 홍대에서 집까지 걸어가겠다고 한 적도 있다. 당연히 그러지는 못하고 길도 잘못 들어서 동대문에서 심야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 30대 초반 즈음부터는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버릇이 남아 취하면 혼자 밖으로 나가 한참 산책을 하고 들어오기도 했다.
어쩐지 지금은 그 버릇이 사라졌다. 이제는 굳이 왜 그렇게 걸어가고 싶어했을까보다는 그 많은 시간 동안 내가 뭘하며 걸었을까를 곱씹어 본다. 분명 긴 시간이었텐데,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쌓았을까?
걸으면서 무엇을 했느냐면 분명히 끊임없이 생각을 했을 거다. 로또 당첨같은 망상이라던가, 우연히 곤경에 빠진 여인을 구한다는 상상이라던가, 우연히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술에 취한 여성과 연이 닿아 한 잔을 더 하거나 하는 상상을 하고, 영화같은 섹스를 하는 상상 따위를 했을거다.
그리고는 아마 지나간 연인들을 생각했겠고, 괜히 휴대폰을 열어 문자 목록 같은 걸 뒤져봤겠고, 담배를 피워 물었겠고, 담배를 끄기도 했을 거다.
네온사인을 찾아다니고 사람들이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다운타운을 기웃거리는 산책습관이 있다보니, 내 산책은 늘 햇살과 자연보다는 고성과 싸움, 토사물과 비둘기, 마감을 하는 술집에서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나 침전물에 더 가까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런곳에서 스스로를 조각하는 악취미가 있었다.
한번은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사람이 가까이 있는 것과 닮아 간다고, 술 한 잔을 마셔도 부자랑 마시고 강남에서 마시라고, 걸러 듣겠다면 걸러 들을 수 있는 소리였지만, 당시에 나는 그것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떄부터 비싼 술집에 대한 거부감을 없앴고 비싼건 비싼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무리하여 가격을 지불하기도 했고, 혼자 바를 기웃기웃 거리기도 했지만, 어쨌든 돌아갈 때는 늘 다운타운의 쓰레기 사이를 걸어야 했다.
아버지는 종이 아니었고, 나를 키운 팔할은 부모님이 분명하니 미당같은 거창한 싯구는 쓰지 못하더라도, 20대의 내가 나를 조각하는데, 스스로 밤거리를 애용했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지금은 다운타운이 없는 곳에 산다. 덕분에 밤산책을 잃었고, 그래서 종종 정체성을 잃은 기분이 든다. 차를 끌고, 안양이나 수원에 가서 산책을 해보기도 했으나, 시동을 거는 순간에 이미 산책이 아니게 되어 같은 의미가 있진 않았다. 게다가 술을 마시지도 못하고,
이 집에 3년 쯤 살았다. 산책하는 취미가 사라졌다. 오늘 문득 산책과 함께 사라진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괜히 돌이켜봤다. 20대의 그 수많은 밤을 걸으면서, 나는 뭘 했을까?
(사진은 09년 10월 30일 새벽3시에 성남에서 찍은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