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팠다. 열이 심하길래 애꿎은 감기약만 먹었는데, 듣지 않더니 장염이었다. 병원에서 약을 받아야 한 이틀먹고 낫는가 싶더니, 술한번 마셨다가 된통 도져서 일주일을 고생했다. 아픈와중에 내신기간이라 수업은 수업대로 몰리고, 신규는 또 왜이리 많은지, 고생을 좀 했다. 끙끙대면서 몸만 나으면, 뭘 해야지, 뭘 해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낫고보니까 정신이 없다.
몸이 낫고, 개판이 된 집안을 좀 청소하려고 이것저것 들춰보는데 우편물들이 잔뜩 나왔다. 대부분 흘낏 보고만 고지서들인데 전부다 납부기한이 지나있었다. 연체료야 뭐 물면 되는데 문제는 그 중에 집 재계약 요청서류가 있었다. 기한은 2주 전까지였다. 순간 등에 소름이 사악 돋아서 얼른 알아보니까 다행히 늦었다고 큰 문제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 외 건강보험이라든지, 지방세 등도 밀려있었고, 자동차 보험은 만기가 이틀 남았었다. 몰려온 일들의 기한을 보면 겨우 일주일 아픈 탓은 아니고 아무래도 여름 내내 영 정신없이 살았는지 여름 내내의 업보가 몰려있었다.
전부다 처리를 하고, 문득 스쿠터를 닦고 싶어서 세차장으로 끌고 갔다. 사실 이것도 너무 더러워서 탈 때마다 옷이 더러워지는 지경이었는데, 그냥 생각없이 타고 있었다. 세차를 하다보니 머플러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살펴보니까 머플러를 고정하는 볼트 두 개가 다 부러져 있다. 어쩐지 요즘 소리가 이상하다 했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LH를 들러서 서류를 제출하고 판교에 있는 베스파지점으로 갔다. 정비사가 보자마자 ‘아 이건 일이 크겠는데요?’ 라고 했다. 부러진 볼트를 빼낼 수가 없다는 거다. 아무래도 볼트를 없애려면 엔진을 내려서 엔진케이스를 갈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180만원 정도 든다는 거다. 스쿠터를 팔아도 100만 원이 안 나올 것 같은데… 여차저차 하다가 폐차이야기까지 나왔다. 정비사는 자기도 드릴도 한번 뚫어보고, 여기저기 알아보겠지만 아마 안될거다, 고객님도 동호회같은데 뒤져보시라고 말하길래 모쪼록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일단 스쿠터를 두고 왔다. 내일 쯤 전화와서 ‘해냈습니다!!’ 같은 말을 들었으면 좋겠는데, 근데 어떻게 두 개가 다 부러져있지?
이러나 저러나 또 몇 십은 깨질 모양이다. 마침 월급날이기도 해서 집에 와서 정산을 했는데 또 마이너스다. 이전까지의 마이너스야 백수시절의 카드값을 감당하느라 그랬다 쳐도 꽤 아껴 썼다고 생각한 이번 달 까지 마이너스인건 이해가 안됐다. 아니 집에만 있는 내가 대체 언제 170만원을 썼단 말인가. 퇴직금부터 해서 작년하고 올해는 돈이 정말 줄줄줄 새고 있다. 카드론까지 해서 이젠 돈 빌릴 데도 없는데, 그나마 지난 달에 외주를 좀 해놔서 못막을 돈은 아니었다. 한 백만원 남을 줄 알았더니…
이러느니 저러느니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데, 마침 외주의뢰가 왔다. 타이밍도 좋다 싶어서 열어봤는데, 영 번거롭고 돈도 너무 싼 외주였다. 올해 이런 똥과정을 많이 만나서 거절도 많이 했는데, 하필 스쿠터 맡기고, 빚갚고 한숨쉬는 날에 이런 외주라니… ‘돈없다고 이런거 하지 말자,‘ 싶어서 한번 거절했는데, 담당자가 한번 더 부탁하길래 좀 고민하다가 그냥 하겠다고 해버렸다. 오토바이 수리비 벌지 뭐, 고칠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난 그 덜렁거리는 머플러를 달고 서울까지 다녀왔네…
월요일 새벽엔 월식을 보겠다고 새벽에 집 뒤로 나가봤는데 달은 안보이고 부쩍 큰 나무들이 보였다. 문득, ‘아 이 나무들이 언제 이렇게 컸지? 내가 집 뒤를 언제 와봤더라?’ 생각해보니 단지 산책을 올해들어 처음하는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올 여름이 덥긴 더웠는지, 내가 올해 힘들긴 힘들었는지, 단지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다 부쩍부쩍 자라있었고, 모습이 바뀌어있었다. 일식은 못보고 밤공기가 좋아서 단지주변이나 한바퀴 돌다가 들어왔다.
참 그러고 보니 집안 꼴도 가관이었다. 널리 옷가지며, 쓰레기, 설겆이, 언제 사놨는지도 모르는 콘돔들이나 굴러다니고 있고, 테이블 위엔 온통 쓸데없는 것들만 잔뜩 올라와 있다. 뭐한다고 이러고 살고 있는지 원, 아무래도 정신 좀 차리라고 일들이 펑펑펑 터지나 싶다. 그래서 화요일엔 집을 싹 치우고 단지 주변으로 러닝까지 뛰었다. 앞으로 아침에 뛰어야겠다.
이러나 저러나 스쿠터만 좀 큰 돈 안들이고 고칠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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