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윤세민 20250926
요즘은 쓰레드에 아주 빠져 살고 있다. 예전 트위터 전성기 시절처럼 하루종일 붙어 살고 있다. 오늘 ‘주간윤세민’을 쓰기 위해 \둘러보았더니, 쓰레드에 썼던 글들을 이어서 ‘주간윤세민’을 갈음해도 될 수준이다. 이번서 이번주엔 그리하려 한다. 퇴근길 운전을 하면서, 문득 부모님을 생각하다가 도대체 어쩌자고 이렇게 한심하게 살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타고 난 것에 비하면 꽤 발버둥 치며 살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고, 나 사는 건 참 변한 게 없는데 내 주위엔 왜 남은 게 하나도 없나 싶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워낙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산책은 물론이고 산책을 하면서도 특히나 초행길을 좋아했다. 사주를 안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역마살이 좀 쎈 편이라. 소설 '역마'에서도 마지막에 주인공이 '어머니, 나 엿판 하나만 맞춰주' 할 때 마치 내 삶인 양 마음이 놓였다. 그래 살아도 될 양이면, '나도 어디 돈주겠다는 곳이라 졸졸 따라다니며 살면 좋았을 걸', 하고 종종 생각하는 데, 어째 또 팔자가 한번도 그렇게 흘러간 적이 없다. 살면서 어떤 직업에서도 고용안정을 느낀 적은 없었는데, 그렇다고 또 마음대로 쏘다닐 팔자는 아니어서, 석달짜리 안정감에 목을 걸고 살았다. 확신이 사치면 안정이라도, 안정도 사치면 체념이라도, 어디서 주었으면 좋겠는데, 팔자는 그조차도 용납을 안하고 불안으로 하루를 떠민다. 학원강사 경력만 10년을 한 동료강사 (나보다 13살이 어리다.)의 책상을 우연히 봤는데 자나팜 정이 있었다. 늘 맘편히 사는 사람 같았는데, 불안장애가 있었구나, 우리 뭐 때문에 이렇게 사는건지 정말 알 수 없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가르칠 때마다 괴롭다. 이걸 이딴 식으로 가르치다니, 근데 또 괴로운 마음과는 별개로 수업시간에 엄청 신나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수사냐고 아이들이게 열을 올린다. 지난 달엔 '운수 좋은 날'을 가르치면서, 이번 달엔 '변신'을 가르치면서 그랬다. 너희들이 지금 마음속에 몽글몽글 떠오르지만 말로는 표현 못하는 그걸 기억하라고, 김첨지가 정말로 못됐냐고, 그레고르가 정말로 징그럽냐고, 그게 아니라면, 왜인지, 그걸 기억하라고 엄청 열을 올려서 이야기하다보니, 아이들이 조금 의뭉스러워 했던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애들 시험이 끝났다. 아이러니하게 거의 점수가 올랐는데 100점이 하나도 없다. 이걸 핑계로 날 자르면 좋으련만, 시험 한 번, 책 한 권 고비를 넘길 때마다 죄를 쌓는 기분이다. 언젠가부터 난 잘 쓴 글과 잘 쓴 글씨도 구분하지 못한다.
요즘 잘먹는 안주가, 사과에 땅콩버터를 듬뿍, 아주 듬뿍 발라 먹는 건데, 사과 덕분에 함께 먹을 땐 그 뻑뻑함을 모르다가, 사과를 다 먹어버리고 땅콩버터만 한스푼 떠먹고는 곧바로 그 탈출구없는 뻑뻑함에 깜짝 놀란다. 어쩌면 이토록 달콤하고 뻑뻑한 맛이라니! 입안에서 바쁜 혀를 놀리면서 갈곳없는 뻑뻑함에 당황한다. 어릴적 007 골드핑거에서 금칠에 질식한 미녀를 본 느낌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매력적이면서 그대로 질식할 것 같은 느낌, 늘 이별이 그랬는데, 대책없이 듬뿍 퍼먹은 땅콩버터처럼 입안에서 뻑뻑하고, 달콤하고, 또 그대로 갈급했다. 그 뻑뻑함은 물을 마셔도 해갈되지 않았다. 사과를 한조각 먹던가, 아니면 시간들을 들여 침을 서서히 모아야 녹아내야 했는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며칠 사과를 먹었더니 집안에 날파리가 다닌다. 멍하니 취기에 절어 허공을 보고있는데, 마침 날파리의 유영이 선우정아의 노래와 리듬이 맞는다. 지휘봉의 끝처럼 그 유려한 유영을 보다보니, 저게 날파리인지, 내 취기인지, 혹은 육화된 음악인지 알 길이 없어진다. 불콰한 얼굴을 감싸고 또 그저 소리없이 비명만 지를 뿐이다.
늪에서 잔듯한 찌부둥한 기상 시끄러운 관절과 요란한 뱃속 사정 습관적 휴대폰의 요란한 공허 얼마나 대단한걸 먹었다고 늘어있는 몸무게 휴일임에도 예정된 출근 그대로 눈을 감고 좀 더 누워있는 시간 문득 떠오른 영화의 배우가 지금은 죽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늘어진 쓰레기와 집안 풍경 님의 침묵 기분 나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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