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잔만 마시고 잔다는 게, 초밥에 빵까지 쳐먹고 몇 잔을 연거푸 들이부어 취했다.
B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기분이 좋았다. 좋은 일은 하나도 없었고, 좋은 일이 일어나리란 기별도 없었고 오히려 따져본다면 나쁜 일만 있다. 심지어 아침에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침대에서 한시간을 허우적거렸고, 일어나서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그냥 기분이 좋았다.
출근길은 평소보다 더 막혔고, 도착하니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서 층을 옮겨가며 몇 번 둘러보고 겨우 낑겨넣어서 차를 댔다. 평소보다 일은 하기가 싫었고, 예상했던 것보다 추가 되었던 일도 있었다. 그래도 괜히 기분이 좋았다.
좋은 일이 일어날거란 아무런 기별도 없었지만 괜히 계속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주변에서 몇가지 스팟이 터졌지만 무덤덤히 처리했고, 왜 이렇게 무덤덤한지 모르겠다고 의사에게도 말했다. 그냥 백지로 남겨놓은 다음 달, 아니 백지보다는 마이너스가 확정되어있는 다음 달에 괜히 좋은 일이, 미지의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집에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3만원 5만원 8만원 짜리 위스키를 두고 고민하다가 괜히 8만원짜리 싱글몰트를 집어들었다. 맛도 모르는 B한테는 차라리 저럼한 블랜디드가 맞았을텐데,..
‘위기를 앞두고 이렇게 무덤덤해서 몰락한 걸까? 아니면 덕분에 버텨온 걸까.’ 논리적으로는 위기인 상황이 맞았기에 B는 가끔씩 스스로의 무덤덤함, 이상하게 좋은 이 기분을 염려해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냥 좋은 기분을 가지고, 술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미 몇 번이나 읽은 책이지만, 다시 기대를 갖고 그 책을 또 집어드는 독자처럼, B는 알람을 확인하고 자리에 누웠다. 사실 3만원이든 5만원이든 8만원이든 위스키 맛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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