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의 게시물이다. 주간윤세민을 써야한다는 마음의 짐을 계속 갖고 있었는데, 내일 내일 하다보니 한 달이 되었다. 한 달 쯤 되니 이제 뭘 했드라? 하고 고민할 일은 없어서 편하다. 다만 이것도 안쓰다보니 뭘 써야할지 모르겠네,
매일 혼자 취해서 잠들던 작년에 비하면 술이 많이 줄었다. 취해서 잠드는 날이 거의 없다는 걸 생각해보면 꽤 고무적이다. 좋은 일이다.
경주여행을 다녀왔다. 작년부터 벼르던 여행이었는데, 대신 결심해준 연인 덕에 1박2일로 목표한 건 다 보고 왔다. 목표가 수학여행이었거든, 그래서 첨성대, 천마총, 불국사 석굴암을 보고 왔다. 경주엔 빈 땅이 참 많아서 그게 좋았다. 너른 땅 위에 소복이 올라와있는 왕릉이 곡률이 너무 좋아 한참 동안도 앉아 있을 수 있을 거 같았다. 핫핑크 경주복식을 입고 돌아다녔는데, 덕분에 핫핑크가 내 퍼스널 컬러에 안맞는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생 루틴없이 되는대로 사는 대명사였는데, 제작년 즈음인가? 출퇴근이 명확해지면서 루틴을 잡고 싶단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었다. 일, 운동, 청소 등의 루틴을 이제 좀 잡나? 싶었을 때 실직을 했다. 생각해보면 웃픈 일이다. 규칙적인 생활이 팔자에 없는 사람인가?
실직을 할 때만 해도 적어도 올해는 아무것도 안하고 보내리라 다짐했는데 왠걸 회사를 다닐 때보다 몇 배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월세는 내야 하고, 사람구실도 해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정말이지 시간을 시간단위로 쪼개서 쓰고 있다. 원래 난 시간을 하루 단위로 쪼개서 쓰는 사람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동사무소를 다녀오면 그날은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었다는 얘기지, 근데 요즘엔 하루를 쪼개서 세 네가지일을 하고 있다. 바쁘다보면 여유도 일정 중에 하나라, 쉬는 것도 스케줄이 되어버렸다. 정말 꽤나 바쁘다.
처음 주간윤세민을 쓰기로 했을 때만 해도, 아무것도 없는 40대 싱글이 우당탕탕 어떻게 살아가는 가는 지를 적어야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땐 혼자 여행, 혼자 캠핑, 이런 저런 소셜링들을 부지런히 하면 이것도 컨텐츠가 되겠지 싶은 마음이었는데,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나는 생각보다 가진게 많았고, 뭐 뭘 적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주위에서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었고, 또 생각보다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우연과 우연과 우연들, 합치면 운명처럼 느껴지는 일들이 쉴 새 없이 벌어졌고, 결국 결코 예상하지 않은 좌표에 도착해 있는 11월이다.
사실 실직하는 순간 왜인지, 삶을 그냥 운명에 맡겨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나대로 있으면 직업이고, 일이고, 돈이고, 생길 것 같은 느낌, 내 의지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설사 의지대로 된다 해도, 그보다는 우연히 일어난 일의 결과가 더 좋았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취직에 대한 두려움 없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노라 했는데, 그 운명이 이렇게 바쁜 결말일 줄이야. 사실 아직도 약간 그런 느낌이다. 대충 내년 쯤에 어떤 우연이 또 나를 어디로 데려가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이렇게 도태되겠지,
그래도 다행히 무슨 영문인지 좋은 일만 일어나고 있다. 삶에 부족한 게 하나도 없다. 좋은 일만 잔뜩 있는데 혼자 마음 줄을 못 잡아서 힘들어 하고 있다. 남들에게 아무것도 아닐 일에 혼자 흔들려서 심장이 뛴다. 마흔살은 어쩜 이렇게 스무살이랑 똑같은지 육체가 혹사될 수록 마음이 놓인다.
부모가 늙었다. 자식은 평생 이걸 부정하며 살다가 어느 순간 더이상 부정할수 없다는 걸 깨닫는데, 아부지 칠순이 내년이던가 내후년이던가? 물어보고는 느꼈다. 부모가 늙었다는 걸, 다행히 두 분 모두 아직 병치레가 없다. 그거면 됐지 뭐, 어머니랑 뮤지컬이라고 보러가리라. 아버지랑 영화를 자주 보러가리라 라는 다짐을 만날 다음달 그 다음달로 미루다보니 뮤지컬이나 영화보다는 칠순이 먼저 찾아왔다. 참 세월이 야속하다고 하기엔 세월이 보기에도 내가 훨씬 야속할 거 같다.
참 나쁜 일이 하나 있다. 한 달 동안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다. 이건 굉장히 나쁜 일이다. 한강 책도 좀 빌려다 읽어봐야 할텐데, 한강의 소설을 마지막으로 읽은 게 20년 전이긴 하지만 재미있게 읽은 적이 없어서 쫌 자신이 없다. 뭐가 됐든 책을 좀 꾸준히 읽어야 하는데,
타투가 하고 싶은데 뭘 하고 싶은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타투가 너무 팔에만 지글지글있어서 다리나 몸통에도 좀 있었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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